유 와 무 65 장 – 인간화된 무지 / 교정본

Ignorance Personified

인간화된 무지


God is Indivisible One, and is indivisibly in each one and everything.

신은 불가분한-> 나뉠 수 없는(뒤에 불가분이 나오므로, 앞에는 다른 표현으로) 하나(One)다; 신은 각각의 모든 이와 모든 것 안에 불가분하게 있다.

What is it then that causes apparent divisions? There are no divisions as such, but there is an appearance of separateness because of ignorance. This means that everything is of ignorance and that every one is Ignorance personified.

그렇다면 현상적(apparent) 분리됨은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 것인가? 사실 분리 같은 것은 없다; 다만 무지로 인해 분리된 듯한(apparent) 모습만 있는 것이다. 이는 곧 ‘모든 것이 무지이며, 모든 사람이 인간화 무지(ignorance personified)’라는 것을 의미한다.

A drop in an ocean is not separate from the ocean. It is a bubble over the drop that gives it an appearance of separateness, but when the bubble bursts the drop is not, and the indivisible ocean is.

바다 속의 물방울은 바다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 물방울을 덮은 거품이, 분리된 듯한 모습을 주는 것 뿐이다-> 모습을 띠게 할 뿐이다.(띠다: 빛깔이나 색채 모양 따위를 가지다, 나타내다) ; 그러나 언젠가 그 거품이 터지게 되면 -> 터지면, 물방울은 사라지고 불가분한 바다만이 남는다.

When the bubble of ignorance bursts the self realizes its oneness with the indivisible Self.

무지의 거품이 터질 때, 자아는 ‘불가분한 참나'(indivisible Self)와 자신이 하나임(oneness)을 깨닫는다.

 

유 와 무 64장 – 용서하고 잊어 버려라 / 교정본

Forgive and Forget

용서하고 잊어버려라

People ask God for forgiveness. But since God is everything and everyone, who is there for Him to forgive? Forgiveness of the created was already there in His act of creation. But still people ask God’s forgiveness, and He forgives them. But they, instead of forgetting that for which they asked forgiveness, forget that God has forgiven them, and, instead, remember the things they were forgiven—and so nourish the seed of wrongdoing, and it bears its fruit again. Again and again they plead for forgiveness, and again and again the Master says, I forgive.

사람들은 신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신은 모든 것이고 모든 사람이기 때문에, 용서할 대상이 없지 않은가? -> 그러나 신은 모든 것이고 모든 사람인데, 그에게 용서할 누군가가 있겠는가? 창조된 존재들에 대한 용서는 이미 그분의 창조 행위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신의 용서를 구하고, 신은 그들을 용서해준다; 그러나 사람들은 신이 그들을 용서했음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대신 자신이 용서받았던 내용들만을 기억한다 — 이렇게 그들은 잘못된 행동의 씨앗에 물을 주고, 그 씨앗은 커서 다시 잘못의 열매를 맺게 된다. 그래도 그들은 계속해서 용서를 거듭 간청하며, 마스터는 계속해서 ‘용서한다’고 말한다.

But it is impossible for men to forget their wrongdoings and the wrongs done to them by others. And since they cannot forget, they find it hard to forgive. But forgiveness is the best charity. (It is easy to give the poor money and goods when one has plenty, but to forgive is hard; but it is the best thing if one can do it.)

인간은 자신이 잘못한 일들과, 남들이 자신에게 잘못한 일들을 잊지 못한다. 잊을 수 없기 때문에 용서는 그만큼 어려워진다. 하지만, 용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뒤 괄호에도 설명이 되어 있으므로 삭제해도 될 듯요. 최고의 자선 행위다. (많이 가진 사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것은 쉽지만, 용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용서야말로 최고의 자선이다.)

Instead of men trying to forgive one another they fight. Once they fought with their hands and with clubs. Then with spears and bows and arrows. Thenwith guns and cannon. Then they invented bombs and carriers for them. Now they have developed missiles that can destroy millions of other men thousands of miles away, and they are prepared to use them. The weapons used change, but the aggressive pattern of man remains the same.

인간은 서로를 용서하려는 대신에 싸운다. 일단 손과 몽둥이로 싸우게 되자, 얼마 후에 창과 활로 싸웠고, 다음에는 총과 대포로 싸웠다. 그 후에는 폭탄과 항공모함을 발명하였다. 이제 인간은 수천 마일 떨어져 있는 사람들 수백만 명을->수백만을 죽일 수 있는 미사일들을 개발했으며, 그것을 사용하기 위한 준비도 마쳤다. 무기는 변했지만, 인간의 공격적인 성향은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 있다.

Now men are planning to go to the moon. And the first to get there will plant his nation’s flag on it, and that nation will say, It is mine. But another nation will dispute the claim and they will fight here on this earth for possession of that moon. And whoever goes there, what will he find? Nothing but himself. And if people go on to Venus they will still find nothing but themselves. Whether men soar to outer space or dive to the bottom of the deepest ocean they will find themselves as they are, unchanged, because they will not have forgotten themselves nor remembered to exercise the charity of forgiveness.

이제 인간은 달에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리고 처음으로 달에 도착하는 나라는 그 나라의 국기를 꼽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달은 우리 것이다”라고. 그러나 또다른 나라가 나타나 그 주장에 반박할 것이고, 두 나라는 달의 소유권을 놓고 이 지구에서 싸우게 될 것이다.* 달에 간 사람이 누구든간에, 그는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자기 자신 말고는 찾을 것이 없을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금성에 간다 해도, 그들 자신 밖에는 아무 것도 찾지 못할 것이다. 인간이 우주로 날아 오르거나 가장 깊은 바다의 바닥까지 잠수한다 해도, 변하지 않은 자신밖에는 찾지 못할 것이다-> 자신만을 발견할 것이다.(앞에 두 문장에서 ‘찾지 못할, 찾을 것이 없을.. ‘계속 이런 문장이어서 다른 형식으로);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자신은 잊지 못하면서도, 용서를 실천하는 자선행위는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Supremacy over others will never cause a man to find a change in himself; the greater his conquests the stronger is his confirmation of what his mind tells him—that there is no God other than his own power. And he remains separated from God, the Absolute Power.

남을 지배하는 것으로는 결코 자신 안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인간은 더 큰 것을 정복하면 할수록 – 자신의 파워 외에는 신이 따로 없다는 마음(mind)의 주장을 – 더 확고하게->확고히 믿게 된다. 따라서 그는 절대적 파워 자체인 신으로부터 동떨어진 채 남게 된다.

But when the same mind tells him that there is something which may be called God, and, further, when it prompts him to search for God that he may see Him face to face, he begins to forget himself and to forgive others for whatever he has suffered from them.

그러나 언젠가 그 똑같은 마음이 ‘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라고 말하게 되면, 그 똑같은 마음이 신의 얼굴을 직면하고파 신을 찾으라고 부추기는 때가 오면, 그는 자기->삭제 자신을 잊기 시작하게 되고 그에게 어떤 고통을 끼친 사람일지라도 용서하게 될 것이다.

And when he has forgiven everyone and has completely forgotten himself, he finds that God has forgiven him everything, and he remembers Who, in reality, he is.

그리고 그가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자신마저 완전히 잊게 되면, 그는->앞에 주어가 나와있으므로 두번 안 써줘도 될 듯요. 신께서 이미 그의 모든 것을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실재(reality)의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역자주 – 이 말은 메허 바바의 미래에 대한 예언은 아님. 다만 번역상 예언처럼 기술된 것임.

유 와 무 63장 – 아바타의 작업(일) / 교정본

The Working of the Avatar

아바타의 작업(일)

The Avatar draws upon Himself the universal suffering, but He is sustained under the stupendous burden by His Infinite Bliss and His infinite sense of humour. The Avatar is the Axis or Pivot of the universe, the Pin of the grinding-stones of evolution, and so has a responsibility towards everyone and everything.

아바타는 우주의 모든 고통을 그분->삭제 or 자기 자신에게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그의 무한한 지복과 무한한 유머감각은 그 어마어마한 짐을 견뎌낼 수 있도록 그를 지탱시켜 준다->견뎌내도록 그를 지탱시켜준다. / 견뎌낼 수 있게 그를 지탱시킨다. 아바타는 온 우주의 중심축 또는 중심점이며, (돌고 도는) 멧돌과 같은 진화과정의 중심이기 때문에, 그는->삭제. 문장 앞에 ‘아바타는’란 주어가 나오므로 두번 쓸 필요 없음. 모든 존재와 모든 사물에 대한 책임을 지닌다.

At each moment in time He is able to fulfil singly and together the innumerable aspects of His universal duty because His actions are in no way constrained by time and distance and the here and now of the senses. While engaged in any particular action on the gross plane He is simultaneously working on all the inner planes. Unlike the actions of ordinary men, the Avatar’s every action on the gross plane brings about numberless and far-reaching results on the different planes of consciousness. His working on the inner planes is effortless and continues of itself, but because of the very nature of grossness His work on the gross plane entails great exertion.

시간 속에서의->삭제 매순간마다, 그분은->아바타는 독자적으로 또는 다른 이들과 함께 그분의->자신의 우주적인 의무의 무수한 측면들을 완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의->그의(위 문단에서는 그냥 ‘그’로 쓰였음) 행위들은 시간과 거리의 제한, 또는 오감(senses)의 영역인 ‘지금’과 ‘여기’의 제한을 전혀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분은 물질적 경지에서 어떤 특정한 활동을 하는 동시에 모든 내적 경지*들에서도 작업을 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의 행위와 달리, 물질적 경지에서의 아바타의 모든 행위들은 수없이 많은 광범위한 결과들을 여러 다른 의식의 경지들에도 초래한다. 내적 경지들에서의 그분의 작업은 노력 없이 일어나며, 자체적으로 지속된다; 그러나 물질적 경지는 그->삭제 본성상 물질적이므로, 이 경지에서의 그분의 작업에는 상당한 노력이 요구된다. (바바가 아바타인데, 아바타에 대한 설명에서 ‘그분’이라고 하기보다 ‘그’라고 하는 것이 더 객관적인 설명이 되고, 자연스러운 듯 합니다.)

As a rule each action of an ordinary person is motivated by a solitary aim serving a solitary purpose; it can hit only one target at a time and bring about one specific result. But with the Avatar, He being the Centre of each one, any single action of His on the gross plane brings about a network of diverse results for people and objects everywhere.

일반적으로, 평범한 사람이 행하는 행위들은 각각 한 번에 하나의 목적만을 동기로 삼는다; 각각의 행위들은 오직 하나의 목적만->삭제을 추구하며, 하나의 특정한 결과만을 가져온다. 그러나 각각의 모든 존재의 중심인 아바타가 물질적 경지에서 행하는 어떤 하나의 행동도-> 행하는 행위는, 단 하나의 행위라도 모든 곳에 있는 사람들과 사물들을 위한 다양한 결과의 회로망을 야기한다.->초래한다. 유발한다.

The Avatar’s action on the gross plane is like the throwing of a main switch in an electric power-house, which immediately and simultaneously releases an immense force through many circuits, putting into action various branches of service such as factories and fans, trains and trolleys and lighting for cities and villages.

물질적 경지에서의 아바타의 행위는 전기발전소의 주 전원 스위치를 켜는 것과 같다; 즉 그의 행위는 켜는 즉시 그리고 동시에 여러 회로를 통해 엄청난 힘을 방출하여, 여러 마을과 도시의 조명, 기차와 전철, 공단과 선풍기 등의 다양한 서비스 지점에 전력을 제공하는 발전소의 주 전원을 켜는 것과 같다.

An ordinary physical action of the Avatar releases immense forces in the inner planes and so becomes the starting point for a chain of working, therepercussions and overtones of which are manifest at all levels and are universal in range and effect.

아바타의 평범한 육체적 행위 하나는 여러 내적 경지들에 엄청난 힘(세력)을 방출시켜 사슬처럼 이어지는 연쇄작업의 출발점이 되고, 이 행위의 영향력과 여파는 모든 경지에 발현되며, 그 범위와 효과는 전우주적이다.

Everything in the universe is, and from the beginning has been, a materialization of the divine Original Whim working out irrevocably without default, deflection or defeat. It is the unfolding upon the screen of consciousness of the film of creation, sequence after sequence, according to the pattern that issued from the Original Whim. However, when God as God-Man plays the role of Audience He can alter or erase at His avataric whim any thing or happening which was destined from the Original Whim. But the very arising of the avataric whim was inherent in the Original Whim.

우주의 시작에서부터, 우주 안의 모든 것들은 ‘근원적 신성의 충동’(Divine Original Whim)에서 초래된 작업이 물질화되어온 것이다; 이 작업의 이행에는 어떠한 돌이킴이나 불이행 또는 빗나감이나 패배도 있을 수 없다. 이것은 ‘근원적 충동’에서 비롯된 패턴(각본)에 따라 한 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는, 의식의 화면에 펼쳐지는 천지창조의 영화다. 그러나 신이 갓맨으로 관중의 역할을 맡게 되면, ‘근원적 충동’으로부터 운명지어져 있었던 어떤 상황이나 상태를 ‘그분의 아바타적 충동’(His avataric whim)대로 자유자재로 바꾸거나 {심지어는}->삭제? 지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아바타적 충동’의 솟아오름마저 원래의 ‘근원적 충동’ 안에 이미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The Sufis distinguish between Qaza or destined occurrences, and Qadar or happenings which are impulsive or ‘accidental’. The Avatar’s or Qutub’s actions are impulsive and arise from their infinite compassion; and the functioning of this whim relieves and gives beauty and charm to what would otherwise be a rigid determinism.

수피들은 운명지어진 일들인 Qaza(카자)와, 우연히 또는 충동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인 Qadar(카다르)를 구분한다. 아바타나 쿠툽의 행동들은 충동에 의한 것이며 그들의 무한한 자비심으로부터 {순간적으로}-괄호 삭제? 솟아오른다; 이러한 충동의 기능은, 그 충동이 없었더라면 엄격한 결정론으로만 흘러갔어야 할->흘러갔을 이 세상에 아름다움과 매력을 불어넣으며 안도를 주는 것이다.

The Qutub’s actions bring about modifications in the previously determined divine Plan, but they are limited in extent. But the Avatar’s interventions bring about modifications on a universal scale. For instance, supposing that it was divinely ordained for a war to occur in 1950. It must take place at the appointed time, and the train of events which follows will punctually meet the present time-table. However, if the Avatar is in the world at the time He might, in His exercise of Qadar, ward off the catastrophe by some particular action on the gross plane. And so in the relentless working out of the laws of Nature there can enter the inexplicable divine caprice, spelling out peace instead of war in the diary of man. Kabir has said:

쿠툽의 행위들은 사전에 결정된 신성적 계획을 개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경의 범위는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아바타의 개입은 우주적 규모의 개조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어떤 전쟁이 1950년에 일어나는 것으로 신성적으로 정해져 있었다고 하자. 그 전쟁은 정해진 시간에 발발해야 하며, 이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은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서 정확하게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만일 그 당시 아바타가 세상에 내려와 있다면, 그는 그의 카다르(Qadar)를 행사하여 물질적 경지에서의 특정한 행동을 통해 그 재앙을 막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가차없이 진행되는 자연의 법칙에 불가해한 신성적 변덕이 개입되어, 인류의 일기장에 전쟁 대신 평화가 기록되게 할 수 있다. 카비르는 이렇게 말했다:

Kabir rekha karam kee kabhee na meete Ram Meetanhar samarth hai para samajh kiya hai kam.

O Kabir! The lines of fate are never effaced by Rama; He is All-powerful and can undo destiny, but He never does so for He has given full thought to what He has planned.

Kabir rekha karam kee kabhee na meete Ram Meetanhar samarth hai para samajh kiya hai kam.

오 카비르여! 라마는 절대 운명의 (연결)선들을 없애지 않는다; 그분은 전능하기에 운명을 완전히 취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분은 자신이 계획한 것에 대해 이미 완벽하게 생각을(full thought) 해 보았기에, 결코 그 계획을 나중에 바꾸지 않는다. (이 부분이 카비르의 시인데, 말투를 좀 시적으로 해주지 않아도 될까요?)

The Avatar does not as a rule interfere with the working out of human destinies. He will do so only in times of grave necessity— when He deems it absolutely necessary from His all- encompassing point of view. For a single alteration in the planned and imprinted pattern in which each line and dot is interdependent, means a shaking up and a re-linking of an unending chain of possibilities and events. The least divergence from the pre-drawn line of Fate not onlyrequires infinite adjustments within the immediate orbit of the individual concerned, but involves in its interminable repercussions all those connected by the bond of past sanskaras.

아바타는 원칙적으로 인간 운명의 정상적 작용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는 중대한 필요성이 있는 경우, 즉 전체를 포괄하는 그분의 관점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만 개입한다. 미리 계획되고 각인된 패턴(개요)은 상호의존적으로 연결된 각각의 선과 점들로 이루어진다; 이 패턴에서 단 하나만 수정해도, 끝없이 연달아 파생되는 사건들과 가능성들의 사슬망을 전체적으로 뒤흔든 뒤 재연결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미 그려진 운명의 선에 대한 최소 단위의 교정일지라도 관련된 개인의 궤도가 그 즉시 무한 변경될 뿐 아니라, 그 여파로 과거로부터 산스카라로 연결된 다른 사람들과의 유대관계에도 끝없이 손봐야 할 교정사항들을 초래한다.

The avataric whim isalso part of the divine Destiny. Qaza provides for the absolutenecessity of the Avatar’s ‘chance’ intervention, and the very unpredictability of this intervention is predicted in Qaza—for His infinite compassion, because of which His intervention occurs, may not be denied. In the working out of the avataric whim there is not the least element of chance. The aim of the whim’s action is perfect and its result is precise.

사실, ‘아바타적 충동’ 또한 신성적 운명(기획)의 일부이다. 카자(Qaza)는 아바타의 우연한 개입에 대해 절대적인 필요성을 마련해준다; 그리고 그 개입의 예측불가함마저도 카자에 미리 예견되어 있다 – 그분의 개입이 일어나는 것은 그분의 무한한 자비심 때문이며, 카자에 이미 기획된 거절될 수 없는 교정(사항)이다. 이 아바타적 충동의 작용에는 조금도 우연의 요소가 없다. 이 충동에서 나오는 행위의 목적은 완벽(perfect)하며, 그 결과도 정확(precise)하다.

An ordinary person’s whim, when expressed, may have consequences quite outside itself,as illustrated by the following story. A drunken man was passing by a wood-apple tree and had a whim to taste one of its fruits. As a rule a drunkard has a distaste for sour or tart things because they nullify the effects of drink, so this man’s wanting a wood-apple was purely a whim, independent of thought or real desire. He picked up a stone and threw it at the tree. The stone missed any of the apples, killed a bird, scared away many others and fell on the head of a traveller resting beneath the tree. Thus the haphazard expression of the drunkard’s whim not only failed to accomplishthe whim but brought about results completely outside it. The whim was merely an unrelated fancy, and the action stemming fromit had no connection with its object. This sort of thing can never happen in the exercise of the Avatar’s whim. Arising from compassion and expression of Perfection it is perfect in its aim and results.

다음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평범한 사람의 충동이 현상세계에 표현될 때는 전혀 빗나간 결과들을 초래한다. 어떤 술취한 사람이 ‘인도의 신맛 나는 사과'(wood-apple) 나무 옆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사과맛을 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신맛은 술을 깨게 만들기 때문에, 보통 술꾼들은 신맛 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따라서 이 사람이 신 사과를 원하는->원한 것은 실제적인 욕망이나 생각과는 무관한, {원인없는}->삭제 순수한 ‘충동’이었다. 그는 돌을 하나 들어 나무에 돌을 던졌다. 그 돌은 사과는 하나도 못 맞추고, 대신 새를 한 마리 죽이고 나머지 새들은 놀라 도망치게 했다; 그리고는 나무 밑에서 쉬고 있던 어느 여행자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이처럼 그 술꾼의 {갑작스러운}- 괄호 삭제 충동의 무계획적인 표현은, 그 충동을 실현하는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완전히 빗나간 결과들만을 초래하였다. 그 충동은 {현실과}->괄호 뺴기 무관한 공상에 불과했고, 그로부터 비롯된 {돌을 던지는}-삭제 행동은 그 충동을 불러일으킨 대상과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아바타의 충동의 실현에는, 이런 일이 절대로 불가능하다.->일어날 수 없다. 자비심에서 솟아오르는 아바타의 충동은 완벽함의 표현으로서, 그 목적과 결과도 완벽하다.

 

*역자 주 – 내적 경지(inner planes)는 기적(subtle), 정신적(mental) 경지를 함께 이르는 말. 바깥의 현상세계에 속하는 물질적(gross) 경지와 구분되는 내적 경지들.(이 정의가 괜찮은지요?)

유 와 무 62장 – 정신적 의식 / 교정본

Mental Consciousness

정신적 의식

 

Those on the Mental planes are not conscious of the Gross or Subtle planes. How then is it possible for one on the Mental plane to speak, eat, drink, etc.—in short, to perform actions the same as those of an ordinary man on the Gross plane?

정신적 경지(Mental plane)에 있는 이들은 물질적 경지나 기적 경지(Gross or Subtle planes)를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면 정신적 경지에 있는 이는 대체 어떻게 말하고, 먹고, 마시는 등의 행위를 하는 걸까? 즉, 어떻게 그들은 물질적 경지에 있는 일반적인 사람이 하는 것과 똑같은 행위를 하는 것일까?

It is just as we hear of people walking or eating, drinking, writing, pilfering and so on in their sleep, and yet they are absolutely unconscious of doing these gross actions. It is not uncommon for a person to talk in his sleep. All those around him can hear him speaking in his sleep, but the person himself is not aware or conscious of his own speaking. In the same way, the ones on the Mental planes are totally unconscious of gross and subtle actions and spheres, although all their gross and subtle actions are the outcome of their thoughts and feelings—the functions of Mind.

우리가 흔히 몽유병 환자들에 대해 들은 바로는, 그들은 자는 도중에 자신이 무얼 하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걷고, 먹고, 마시고, 글도 쓰며, 심지어 좀도둑질까지 한다고 한다. 사람이 자면서 말을 하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자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만, 정작 그 사람은->본인은 자신이 말하고 있다는 사실도 의식하지 못한다. 이처럼 정신적 경지에 있는 사람들도, 물질적 영역과 기적 영역에 관해서는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비록 그들이 하는 모든 물질적 기적 행위들이 마음의 기능/작용인 생각과 감정의 결과이긴 하지만, 그들은 물질적 기적 영역에서의 자신의 행동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Those on the Mental planes, while controlling the thoughts and consequent actions of others on the Subtle and Gross planes, are themselves not conscious of their own gross and subtle actions. This is because such a thing as gross or subtle does not exist for them. Their consciousness is totally severed and dissociated from the Gross and Subtle spheres. For instance, an ordinary man cannot but say he is man, for he identifies himself with the gross body. He is gross-conscious and his consciousness of being is associated directly only with the gross body (sharira). Another, who is on the Subtle planes, cannot but identify himself with the subtle body (prana); while yet another, who is on the Mental planes cannot but identify himself with the mental body (mana). This ‘Mind personified’ atma of the Mental plane, who as MANA cannot by any remotest possibility ever identify itself as Sharira or Prana, is wholly dissociated from the gross and subtle bodies and cannot experience the Gross and Subtle spheres.

정신적 경지에 있는 사람들은, 기적 경지와 물질적 경지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그 생각의 결과물인 행동들은 조정(컨트롤)하면서도, 본인 자신의 물질적 기적 행위들은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못한다. 그 이유는, 물질적 기적 영역의 것들이 그들에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의식은 물질적 기적 영역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어 분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물질적 신체와 동일시(identify)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그는 물질적 의식을 지녔으며, 그가 의식하는 존재감도 오직 그의 물질적 신체(sharira)와만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다른 예로, 기적 경지에 있는 사람은 자신을 기적 신체(prana)와 동일시할 수밖에 없다; 또다른 예로, 정신적 경지에 있는 사람은 자신을 정신적 신체(mana)와 동일시할 수밖에 없다. 이 정신적 경지에 있는 ‘인격화된 마음’(Mind personified)은, 자신을 샤리라(Sharira->물질적 신체)나 프라나(Prana->기적 신체)와 동일시할 일말의 가능성도 없다; 그는 자신의 물질적 신체와 기적 신체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물질적 영역과 기적 영역을 전혀 체험하지 못한다.

For example, let us imagine India as representing the Gross world, England as the Subtle world, and America as the Mental world. If A is in India he has full consciousness of India and has totally NO consciousness of England and America. When A goes to England, he is obviously neither in India nor in America. He is now entirely removed from these two places. He possesses full consciousness as before, but this same full consciousness is now absolutely and entirely in England. India is totally dropped form the orbit of his consciousness, while America has not yet entered into it.

예를 들어, 인도를 물질적 세계라고 하고, 영국을 기적 세계, 미국을 정신적 세계라고 하자. 만약 A가 인도에 있다면 그는 인도에 대해선 완전한 의식을 지니지만, 영국이나 미국에 대해선 아무런 의식도 없을 것이다. A가 영국으로 가면, 그는 당연히 인도나 미국에는 있을 수 없다. 이제 그는 인도와 미국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것이다. 그는 전과 다름없이 완전한 의식을 지니고 있지만, 그 똑같은 완전한 의식이 이제 전적으로, 분명히 영국에 와있다. 인도는 그의 의식의 궤도에서 완전히 벗어났으며, 미국은 그의 의식의 궤도에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Similarly, when A goes to America, he is neither in India nor in England. He is now entirely withdrawn from these two places. He continues to possess full consciousness as before but this same full consciousness is now absolutely and entirely in America. India and England are totally dropped from the orbit of his consciousness.

비슷한 예로 A가 미국에 가면, 그는 인도나 영국에 없다. 그의 의식은 두 나라로부터 전적으로 철수된 것이다. 그는 전과 다름없이 완전한 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의식이 이제는 전적으로, 분명히 미국에 와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인도와 영국은 그의 의식의 궤도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Again, consciousness may be compared to the light from a flashlight or torch. The area illuminated by the light of the torch represents the particular plane of consciousness. Imagine three regions stationed at increasing distance from you termed M, S, and G, to represent the Mental, Subtle, and Gross planes; these are in complete darkness to begin with.

선생님, 유연님, 이 아래 비유를 삽화를 하나 넣어주면 어떨까요? 원의 맨 중심부에 SELF가 있고, 그 둘레로 가장 가까운 원이 M(정신적 경지), 그 다음 원이 S(기적 경지), 가장 바깥의 원이 G(물질적 경지) 해서…  (처음 읽는 독자들이, 헷갈릴 수 있을 거 같아 그림으로 그려주면 명료하게 이해될 거 같아요)

의식은 횃불이나 손전등에서 나오는 빛에 비유할 수 있다. 손전등의 빛이 비추는 지역은 의식이 머무는 특정한 경지를 상징한다. 그대가 있는 곳에서 점점 멀어져가며 (정신적, 기적, 물질적 세계를 상징하는) M, S, G의 세 지역이 있다고 상상해보라; 완전한 어둠 속에서 말이다.

When the light of the torch is directed on G (representing the Gross plane), which is furthest from yourself, this region comes under the direct focus of light and is fully lit, with its immediate vicinity dimly glowing from the reflection of that focussed light. The areas S and M are yet in total darkness.

손전등의 빛이 (물질적 경지를 상징하는) G를 향해 비출 때, 그대 자신에게서 가장 먼 곳에 있는 G 지역은 그 빛의 초점이 되어 모든 빛을 받고 완전히 밝아진다; G의 주변부는 빛이 집중된 G에서 어둑하게 반사된 빛만 조금씩 받는다. 그러나 S와 M 지역은 완전한 어둠 속에 있다.

If this light is at last made to shift nearer toward you to focus on S (representingthe Subtle plane), the region G is left in total darkness. Now S alone is fully illuminated, with the dim glow of reflection having moved to the vicinity of the newly focussed area of light.

드디어 그 빛의 초점이 그대에게 더 가까운 (기적 경지를 상징하는) S 지역으로 이동하면, G 지역은 완전한 어둠 속에 남게 된다. 이제는 S 지역만 완전히 밝아지고, 이동한 빛의 새로운 초점인 S의 주변부는 어둑하게 반사된 빛만 조금씩 받는다.

If this focus of lightis shifted still nearer toward you to M (representing the Mental plane), both the regions G and S are left in total darkness. It is now M that receives the full and direct focus of light, and it alone is fully illuminated; while the dim glow of reflection is automatically thrown around this newly focussed area of light.

만일 그 빛의 초점이 그대에게 가장 가까운 (정신적 경지를 상징하는) M 지역으로 이동하면, G 지역과 S 지역은 완전한 어둠 속에 남게 된다. 이제는 M 지역만 완전히 밝아지고, 이동한 빛의 새로운 초점인 S->M의 주변부는 어둑하게 자연적으로 뿌려진 반사된 빛만 조금씩 받는다.

When the focus of this same light is finally shifted still nearer, not only toward you but actually ON you, it is yourself that is fully lit, and all the three regions, G, S and M, are in total darkness. You are thus fully conscious only of your SELF. This final focussing of the light (consciousness) on to your Self is the Goal. This is Self-illumination, or in other words God-realization.

마침내 똑같은 빛의 초점이 더욱 가까이 와서 그대 자신에게로 향하고 집중되면, 이때는 그대 자신이 완전히 밝아진다; 그리고 G, S, M 지역은 완전한 어둠 속에 잠긴다. 따라서 그대는 오직 그대의 참나(SELF)만 완전히 의식하게 된다. 그대의 참나에 이 빛(의식)의 최종적 초점을 집중하는 것이 바로 참목표(Goal)이다. 이것이 참나-깨우침(Self-illumination)이며, 다른 말로는 신적-깨달음(God-realization)이라고 한다.

Any action performed by one on the Mental planes, as observed by the gross-conscious or subtle-conscious atmas, is nothing but a gross or subtle manifestation of a mental action. The apparently gross action that you on the Gross plane see performed by one on the Mental plane, is merely the pattern of that mental function translated on the screen of your own gross consciousness. Hence, the one on the Mental plane, totally dissociated from the gross and subtle, does NOT speak, eat, or drink in the sense that those on the Gross plane eat, drink and speak, though he appears to do so. When you see such a one eating, drinking, speaking, etc., it is nothing but your own gross interpretation of the reflection of his mental activity.

물질적 의식이나 기적 의식을 지닌 아트마들이 볼 때, 정신적 경지에 있는 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은 그 정신적 행동(mental action)에서 비롯되는 기적, 물질적 발현(manifestation)밖에는 안 보인다. 물질적 경지에 있는 그대가 볼 때, 정신적 경지에 있는 이가 행하는 듯한(apparently) 행위들은, 그 사람의 정신적 기능의 패턴을 그대 자신의 물질적 의식의 화면에 해석한 내용으로만 보인다. 정신적 경지에 있는 이는, 물질적 세계와 기적 세계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그는 겉으로는 다를 바 없이 보여도, 물질적 세계의 사람이 먹고 마시고 말하듯이 먹고 마시고 말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먹고 마시고 말하는 모습을 볼 때 그대의 눈에 보이는 모습은, 그의 정신적 활동에서 반영된 내용을 그대 자신의 물질적 눈으로 해석한 모습일 뿐이다.   -> ‘행위’와 ‘행동’이 같이 쓰이는데, 통일해야 할까요?

For example, when you see the moon reflected in a lake, to all intents and purposes it is in the water as long as your gaze is directed at the lake. The moon is not in the water. The reflection of the moon is in the water; but it appears as if the moon is in the water. So, the consciousness of the one on the Mental planes is not here. The reflection of his consciousness is here; but it appears as if he was conscious of the Gross plane.

예를 들어 그대가 호수에 비친 달을 볼 때, 전심을 다해 호수만 바라본다면 달은 물 속에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물론 달은 물 속에 있지 않다. 물 속에 있는 것은 달의 반영일 뿐이다; 그러나 그대의 눈에는 달이 물 안에 있는 ‘듯’ 보인다. 이처럼 정신적 경지에 있는 이의 의식은 이곳(물질적 영역)에 있지 않다. 그의 의식의 그림자만이 여기에 있다; 단지 그가 물질적 경지를 의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When one on the Mental planes performs an action, that act cannot be comprehended by any one having consciousness only of the subtle or the gross. That same act is interpreted differently by the ones on the Subtle planes and the ones on the Gross plane, in the light of their own respective consciousnesses.

정신적 경지에 있는 이가 어떤 행위를 할 때, 그 행위는 기적 경지나 물질적 경지의 의식을 지닌 그 누가 보아도 이해 불가하다->그 누가 보아도 이해할 수 없다. 그 똑같은 행위를 기적 경지에 있는 사람과 물질적 경지에 있는 사람은 서로 다르게 해석한다; 이것은 각자가 다른 차원의 의식으로 비추어보고 있기 때문이다.

In short, the function of Mind of one on the Mental planes, when received by you on the Gross plane, comes through the channel of your gross consciousness and reaches you in the shape or movement familiar to your range of awareness and capacity of comprehension.

요약하면 정신적 경지에 있는 이의 마음의 작용을 물질적 경지에 있는 그대가 받아들일 때, 그대는 자신의 물질적 의식의 경로를 통해 접수하게 된다; 그대의 의식의 범위와 이해의 수용정도에 의해, 자신에게 익숙한 형태나 움직임으로 그 모습을 받아들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