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와 무 40장 – 마야(Maya)는 마술사다 / 교정본

Maya the Showman

마야(Maya)는 마술사다


Maya the Master-Illusionist who produces seemingly existent worlds out of Nothing, will perform its master trick of making everything including my health, energy,words and promises apparently go against me; and my lovers’ faith and trust in me will be tested to their full extent. But Maya is powerless to go against my Work—for Maya itself is the means by which I bring about the results of my Work.

마야(Maya)는 존재하는 듯 보이는 세상들을 무(無)로부터 만들어내는 완벽한 마술사다; 마야는 나의 건강, 기력, 말과 약속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나를 반대하는 듯 보이게 만드는 최고의 속임수를 부릴 것이다. 그리하여 나에 대한 러버들의 믿음과 신뢰는 극도로 시험받을 것이다. 그러나 마야는 나의 작업에 맞서는 데 있어 무력하다. – 바로 마야가 나의 우주적 작업의 결과들을 불러오는 수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Being the instrument for the fulfillment of my Work, Maya, in fact, actually does its utmost to bring about the utmost results of this Work. Maya is the infinite shadow of God’s infinity, and so, having no existence except in non-existence, must naturally give way to the one and only Reality which is God. And then God manifests in His Glory.

나의 우주적 작업을 이루기 위한 도구인 마야는, 사실 이 작업의 최상의 결과를 불러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마야는 신의 무한함(God’s infinity)의 무한한 그림자다; 그러므로 비존재(non-existence) 안에서만 존재하고, 결국 유일한 실재인 신에게 자연히 굴복하게 된다. 그런 후에 그의 영광 속에서 신은 발현(manifest)한다.

When the sun appears over the horizon the shadow projected by an object is much bigger than the object, but when the sun is directly overhead the shadow is under the feet as it were of the object. In my present phase of helplessness and humiliation, the Sun of Truth’s rays appear faint and feeble and the Shadow of Maya large. But when that Sun will be at its zenith the Shadow that was cast ahead of Man, and which dominated his vision and thought will disappear. This will be the victory over Maya when ignorance will be effaced in the glory of God’s manifestation through me.

양이 지평선 위로 떠오를 때, 어떤 사물을 비춘 그림자는 원래 사물보다 훨씬 크다; 그러나 태양이 바로 머리 위에 떠있을 때, 그림자는 마치 사물의 발 아래 있는 것 같다. 지금 나의 ‘무력함과 굴욕의 단계’(helplessness and humiliation phase)에서는 진실의 태양빛이 희미하고 흐리며, 마야의 그림자가 거대하게 보인다. 하지만 저 태양이 정점에 도달할 때, 인간의 앞을 가려서 그의 시각과 생각을 지배해온 그림자도 사라질 것이다. 바로 이것이 마야에 대한 승리다; 즉 나를 통한 신의 발현(God’s manifestation)의 영광 속에서 무지가 소멸되는 때다.

Keep your faces turned towards the Sun and your shadow of individualized Maya will lie behind you and, though still existent, will have no power over you. But if you turn your backs to the Sun your shadows will be before you and you will be following them. Although of yourselves you cannot get rid of your shadows, if you turn your backs on them and keep facing the Sun, at the time of his full ascendance and glory your shadows will disappear forever.

그러므로 태양을 향해 얼굴을 돌려라; 그러면 그대들의 개별적 마야(individualized Maya)의 그림자는 등 뒤로 펼쳐져,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대들에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태양에 등을 돌린다면, 그림자가 그대들 앞을 가려서 그대들은 그림자를 따르게 될 것이다. 비록 그대들이 스스로의 그림자를 없앨 순 없어도 그림자에 등을 돌리고 태양을 계속 마주하면, 태양이 정점에 이르는 순간 그대의 그림자는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유 와 무 39장 – 지식 목적들 의미 고통 / 교정본

Knowledge Purposes Meaning Suffering

지식 목적들 의미 고통


Knowledge
지식


The Sadguru has not to know, He knows. He knows that there is nothing to know.

삿구루는(Sadguru)는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는 안다. 그는 알 것이 없다는 것을 안다.

 

Purposes 목적들

There are some who exist to hate others, be jealous of others and make others unhappy; and there are some who exist to love others and make others happy. One who has become One with God, exists for all, both good and bad. And to become One with God, one has not to renounce anything but one’s own self.

남을 증오하기 위해, 질투하기 위해,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남을 사랑하기 위해,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도 있다. 신과 하나가 된 이는, 선한 이와 악한 이 모두를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신과 하나가 되기 위해선, 자신의 자아 말고는 버려야 할 것이 없다.

 

Meaning


Understanding has no meaning. Love has meaning. Obedience has more meaning. Holding my ‘daman’* has most meaning.

이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랑에는 의미가 있다. 복종에는 더 큰 의미가 있다. 나의 다만(daman)을 붙잡는 것은 가장 큰 의미가 있다.


Suffering
고통

I know three things:
I am the Avatar in every sense of the word.
Whatever I do is the expression of my unbounded love.
I suffer infinite agony eternally through your ignorance.

나는 세 가지 사실을 안다:

나는 아바타(Avatra)다; ‘아바타’라는 단어가 지닌 모든 의미에서.
내가 무엇을 하든, 그 행위는 나의 무제한적 사랑의 표현이다.
나는 그대들의 무지를 통해 영원히 무한한 고통을 겪는다.

*‘daman’: dress.
*다만 (daman) : 바바의 치마 끝 

유 와 무 38장 – 내 가슴을 무겁게 하는 농담/ 교정본

The Jest on my Chest

내 가슴을 무겁게 하는 농담 


As the Highest of the High I am the Wisest of the Wise, yet I have allowed myself to perform an act more foolish than any fool ever would. What is this foolish act of mine? Creating the CREATION.

나는 높은 중에 가장 높은 이로서, 지혜로운 이들 중에도 가장 지혜로운 이다; 그러나 세상 그 어느 바보보다 더 어리석은 행위를 하도록 나자신을 허용하였다. 나의 그 어리석은 행위는 무엇일까? 바로 천지창조(CREATION)를 창조한 것이다.

Creation is really a mighty joke, but the laugh is at my own expense—and now the jest is proving a burden on my chest. Sometimes I am so tired I feel like going to sleep for 700 years.

사실 천지창조는 ‘거대한 농담’이다; 그런데 그 농담의 웃음거리도 바로 나다; 이제 그 농담은 내 가슴에 짐이 되고 있다. 어떤 때 나는 너무 지쳐서, 700 년을 마냥 자고 싶을 때도 있다.

To the fool a foolish act is most natural and effortless. But can you imagine the Most Wise exerting himself and stretching out to perform an act which is opposite to his attribute of Wisdom! That is why I say you can have no idea of what I mean when I say I am tired—it is beyond human understanding.

바보가 어리석은 행위를 하는 것은 아무 노력이 필요없는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가장 지혜로운 이가 자신의 지혜로운 속성과 반대되는 행위를 하려고 애써 비틀고 구부리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래서 ‘내가 지쳤다’고 말할 때의 의미를 그대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 그 말의 뜻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것이다.

 

유 와 무 37장 – 나의 뜻과 걱정 / 교정본

Will and Worry

나의 뜻과 걱정


Duality implies separateness.Separateness causes fear. Fear makes worry.

이원성은 분리됨을 암시한다. 분리됨은 두려움을 야기한다. 두려움은 걱정을 일으킨다.

The way of Oneness is the way to happiness; the way of manyness is the way to worry.

일원성의 길(the way of Oneness)은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다원성의 길(the way of manyness) 은 걱정으로 가는 길이다.

I am the one who has no second so I am eternally happy. You are separate from your Self, so you always worry.

나는 둘이 없는 하나이기에 영원히 행복하다. 그대는 그대의 참나(Self)와 분리되어 있기에, 늘 걱정한다.

To you, what you see is absolutely real; to me it is absolutely false.

그대는 눈에 보이는 세상을 완전히 실재한다고 본다. 그러나 내게 그 세상은 완전한 거짓이다.

I alone am Real and my will governs the cosmic illusion. It is the truth when I say that the waves do not roll and the leaves do not move without my will.

오로지 나(I)만이 실재하며, 나의 뜻(my will)이 우주적 환상을 지배한다. ‘나의 뜻 없이는 파도도 치지 않으며, 나뭇잎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내가 말할 때, 이 말은 진실이다.

The moment the intensity of your faith in my will reaches its height you say goodbye to worry forever. Then, all that you suffered and enjoyed in the past, together with all that you may experience in the future,will be to you the most loving and spontaneous expression of my will; and nothing will ever be able to cause you worry again.

‘나의 뜻’에 대한 그대의 믿음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 그대는 걱정과 영원히 작별인사를 하게 된다. 그러면 과거에 그대가 겪어온 모든 행복, 고통과 함께 미래에 겪게 될 모든 일들을 그대는 ‘나의 뜻’의 가장 사랑스럽고 자발적인 표현으로 보게 될 것이다; 그 무엇도 다시는 그대에게 걱정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Live more and more in the Present which is ever beautiful and stretches away beyond the limits of the past and the future.

지금 이 순간 안에 더더욱 현존하려고 하라; 과거와 미래의 한계를 넘어 언제나 아름답고 널리 펼쳐지는 지금 이 순간에…

If at all you must worry, let it be how to remember me constantly. This is worthwhile worry because it will bring about the end of worry.

만일 꼭 걱정을 해야겠다면, 어떻게 하면 나(바바)를 더 계속적으로 기억할 것인가를 걱정하라.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가치있는 걱정이다; 이로 인해 모든 걱정이 끝나기 때문이다.

Think of me more and more, and all your worries will disappear into the nothing they really are. My will works out to awaken you to this.

나를 더욱더 많이 생각하라; 그러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그대의 모든 걱정거리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이 사실을 그대 안에 일깨우는 것이 바로 ‘나의 뜻’이다.

 

유 와 무 36장 – 앎과 무지 / 교정본

Knowing and Not Knowing

앎과 무지


Being the highest and the lowest I manifest Knowledge and assume ignorance at the same time.

나는 가장 높으면서도 가장 낮기 때문에, 지식을 드러내는 동시에 무지를 취한다.

Even though I know a certain thing will happen within a month, I may chalk out plans as if it was not to occur for years. Again, knowing that an event will not take place for years, I appear to expect it to happen shortly.

나는 한 달 안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면서도, 수 년 동안 그 일이 생기지 않을 것처럼 계획을 잡기도 한다. 또한 어떤 사건이 수 년 동안 일어나지 않을 걸 알면서도, 곧 일어날 것처럼 예상하는 듯 행동할 때도 있다.

In Dnyan(Knowledge) there is Adnyan (Non-knowledge or Ignorance). But in Adnyan there cannot be Dnyan. Having all knowledge on the highest level, I can assume full ignorance on your level. In fact I am Infinite Knowledge, and as such I know what is to happen even after hundreds of years, yet I profess ignorance while I am on your level.

참지식(Dnyan) 안에는 무지(Adnyan)가 들어있다. 그러나 무지(Adnyan) 안에는 참지식(Dnyan)이 있을 수 없다. 내가 그대들의 수준으로 내려와 완전한 무지를 취할 수 있는 것은, 가장 높은 수준에서 모든 지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무한한 지식이다; 따라서 수백 년 후에 일어날 일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대들의 수준에 있는 동안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Even on the gross plane and in ordinary circumstances knowledge and ignorance can be manifested simultaneously. For instance, you say: I do not know how to swim. This implies that you know that you do not know how to swim. Were you not to know you do not know, you could not have had this understanding. This is ‘knowledge of ignorance’.

이 물질적 경지(gross plane)의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지식과 무지는 동시에 드러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대가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릅니다.”라고 얘기한다고 하자. 이 말에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그대가 알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만약 모른다는 사실을 그대가 몰랐더라면, 이러한 이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무지에 대한 지식’이다.

In the same way, I who am Knowledge itself manifest ignorance of knowledge. Knowing all, I seem not to know at one and the same time.

마찬가지로, 지식 자체인 나도 지식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다. 그래서 모든 것을 알면서도, 동시에 모르는 듯 보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