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와 무 30장 – ‘깨어있는 꿈의 상태’에서 ‘참된 깨어남의 상태’로 / 교정본

Awake Dream State to Real Awake State

‘깨어있는 꿈의 상태’에서 ‘참된 깨어남의 상태’로


The First Song of the Infinite is the beginning of Creation. It brings about the apparent descent of the Infinite into the domain of multiple duality. Duality implies unending sufferings.

무한함(Infinite)의 첫 노래가 천지창조의 시작이다. 이 첫 노래는 ‘여러 겹 이원성의 영역'(domain of multiple duality)으로 무한함의 현상적(apparent) 하강을 초래한다. 이원성에는 {반드시} 끝없는 고통이 수반된다.

I am eternally happy for I know that I am the Infinite One. I alone exist; there is nothing besides me; all else is Illusion. Simultaneously, I suffer eternally.

나는 영원토록 행복하다 ; 내가 무한한 그이(The Infinite One)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오로지 나만이 존재한다; 나 외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외의 모든 것은 환상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는 영원히 고통받는다.

I, as myself, am free. But in you, as you, I get myself bound. I knowingly suffer through you, to make you free from bindings. This is my crucifixion. Your experience of suffering is because of sheer ignorance; and your ignorance is my suffering.

나는 나자신으로서 자유롭다. 그러나 그대 안에-> 안의, 그대로서의 나는 나 자신을 속박한다. 그대를 속박에서 풀어주기 위해, 나는 알면서도 그대를 통해 고통받는다. 이것이 나의 십자가의 형벌(crucifixion)이다. 그대가 고통을 겪는 이유는 까마득한 무지(sheer ignorance) 때문이며, 그대의 무지가 바로 나의 고통이다.

You are sitting here before me, each one asserting his separate existence from the other. You come from different levels of society. You possess varied physical and mental aptitudes and abilities. Through the ego-mind you have become individualized, and the One Indivisible Soul is infinitely divided. But the Soul never becomes divided, it ever remains One and the Same.

그대들은 내 앞에 앉아서 각자의 분리된 존재성을 행사하고 있다. 그대들은 사회의 각계 각층에 속해 있다. 그대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다양한 소질과 능력을 지녔다. 에고-마인드(ego-mind)를 통해 그대들은 개체화되었고, 그리하여 하나의 불가분의 영혼이 무한히 나뉘어졌다. 그러나 영혼(Soul)은 결코 나뉘어질 수 없다; 영혼은 영원히 ‘동일한 그 하나’(One and the Same)로 남는다.

You are really the Infinite Soul but you identify yourself with a finite mind and so have to suffer. You have your moments of happiness and sorrow. Whether your pains outweigh your pleasures or your pleasures outweigh your pains, you worry all day about something or the other until your finite existence retreats at night into sound sleep. There you unconsciously merge into the Infinite.

실제로 그대는 무한한 영혼이지만, 자신을 한정된 마음(finite mind)과 동일시하기에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대에게는 행복한 순간도 있고, 슬픈 순간도 있다. 그대의 고통이 기쁨보다 크건 기쁨이 고통보다 크건, 그대의 한정된 존재성(finite existence)이 밤에 깊은 잠에 들 때까지 그대는 온종일 무언가를 걱정한다. 그러다 깊은 잠에 들어서야, 무의식적으로 무한(Infinite)과 합일된다.

In Sound sleep you completely forget yourself and your surroundings, your thoughts and emotions around which are ranged your ideas of imagined happiness and sufferings. But this respite is short-lived.

깊은 잠에 빠지면 그대는 자신과 주변 환경을 완전히 잊게 되며, 그대가 상상하는 행복과 고통이란->고통이라는 개념의 영역에서 맴도는 모든 생각과 감정들도 잊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휴식은 일시적일 뿐이다.

From the sound-sleep state you come down to the normal awake state, and as you come you have necessarily to pass through a dream state even though it be for only the fraction of a second.

깊은 수면의 상태에서 일상적으로 깨어있는 상태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그대는 일초보다 짧은 순간일지라도 반드시 꿈의 상태를 거쳐야 한다.

Now, at one time you have a very happy and sweet dream in which your ideal of happiness is fulfilled. But being a dream it lasts only a little while, and waking pains you so much that you sigh, What a pity it was only a dream!

자, 어떤 날은 그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행복이 실현된 정말로 기쁘고 달콤한 꿈을 꿀 때가 있다. 그러나 꿈인 만큼 아주 잠시 지속될 뿐이다. 오히려 그대가 꿈에서 깨었을 때는, 단지 꿈에 불과했다는 안타까움에 심한 고통을 느끼며 한탄하게 된다.

At some other time you have a horrible dream in which you experience great suffering. Time seems an eternity. As you wake you feel such relief that you say, Thank God it was only a dream after all.

또다른 어떤 날은, 극심한 고통을 경험하는 악몽을 꾼다. 이때 시간은 영원한 듯 느껴진다. 꿈에서 깨면 그대는 정말 안도하며, ‘다행히도 꿈에 불과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In the dream state you enjoy and suffer. When you wake you realize that your enjoyment and suffering was nothing but a dream—an illusion. But knowthat your present state of consciousness which you call being awake, when compared to the Real Awake State, is nothing but a dream state. Your life is a dream within the mighty Dream of God which is the Universe.

꿈의 상태에서 그대는 즐겁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꿈에서 깨었을 때, 그대는 꿈속의 즐거움이나 고통이 모두 꿈에 불과한 환상(illusion)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대가 깨어있다고 말하는 현재의 의식 상태도 ‘참된 깨어남의 상태’(Real Awake State)에 비하면 꿈의 상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라. 그대의 삶은, 이 우주 자체인 신이 꾸는 거대한 꿈(mighty Dream of God) 안에 담긴 작은 꿈일 뿐이다.

From your present awake dream state you have to go through many sleeps of deaths before you get established in the Real Awake State. After ordinary sleepyou awake in the same surroundings; after death you arise in a new environment. But this does not bring the end of your suffering, for the Thread of Action (Karma) continues unbroken and unfailingly keeps on determining your life. The humour of it is new settings create new worries. The grip of illusion is so tight and deceitful that you cannot help worrying. So your life in your awake dream state becomes an endless chain of suffering.

현재 그대가 속한 ‘깨어있는 꿈의 상태’(awake dream state)에서 ‘참된 깨어남의 상태’(Real Awake State)로 확립되기 전에는, 그대는 수많은 죽음의 잠들(sleeps of death)을 거쳐야 한다. 일상적인 잠을 잔 뒤에는 자기 전과 같은 환경에서 깨어난다 ; 그러나 죽음 이후에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환경에서 깨어난다. 그러나 이것도 그대의 고통을 끝내진 못한다. 왜냐하면 행위의 맥락(Thread of Action), 즉 카르마(karma)가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그대의 삶을 결정해가기 때문이다. 재밌는 일은, 새로운 환경마다 새로운 걱정거리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거짓된 환상의 손아귀에 꽉 붙들려 속으면서, 그대는 걱정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깨어있는 꿈의 상태’에서의 그대의 삶은, 끊임없는 고통의 연속이 된다.

You, as gross body, are born again and again till you realize your Real Self. You, as mind, are born only once and die only once; in this sense you do not reincarnate. The gross body keeps changing, but mind (mental body) remains the same throughout. All impressions (sanskaras) are stored in the mind. The impressions are either to be spent or counteracted through fresh karma in successive incarnations. Buddha’s wheel denotes the cycle of births and deaths. The wheel goes on in its ceaseless round. It lifts you to the heights; it brings you down to the depths.

자신의 참나(Real Self)를 깨달을 때까지, 그대는 물질적 신체(육체, gross body)로 거듭해서 태어난다. 그러나 그대의 마음(mind)은 오직 한 번 태어났다가 한 번 죽는다. 이런 의미에서, 그대는 환생하지 않는다. 육체(물질적 신체)는 계속해서 바뀌지만, 마음(정신적 신체)은 언제나 같다. 모든 인상들(산스카라)은 마음 안에 저장된다. 그 인상들은 잇따라 이어지는 환생 속에서 다 소모되거나, 새로운 까르마를 통해 상쇄된다. 부처님의 윤회의 수레바퀴는 거듭되는 생과 사의 순환을 나타낸다. 윤회의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계속해서 돌아간다. 그것은 그대를 최고 정점으로 들어 올렸다가는,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시킨다.

To show you how karma persists as a connecting link and a life- determining factor of future lives I give you an example. There is a king who has vast possessions. But he is a worthless king. He spends all his energy and money in selfish pursuits and luxuries and has no care for his subjects. In his next birth he is born blind and becomes a beggar and thus compensates for his wrong doings.

후생(後生)에 대해 카르마가 어떻게 결정 요인이 되고 연결 고리로 지속되는지, 예를 들어주겠다. 한 부유한 왕이 있다. 그러나 그는 쓸모없는 왕이다. 그 왕은 온갖 사치품과 이기적인 소유에 온 신경과 돈을 허비하고, 백성들은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는 다음 생에 맹인(盲人)으로 태어나 결국 거지가 되어, 전생의 그릇된 행동을 갚게 된다.

Now this king has a servant who is honest and faithful and hard- working. In his next birth because of his merits he is born into a cultured and well-to-do family. One day, when he is going along the street he hears a pitiable cry from the pavement. It is from the blind beggar who was the king in his previous life crying aloud with outstretched hands, Have pity. Give me a penny in the name of the Lord.

이 왕에게는 정직하고 진실하며 성실한 종이 있다. 이러한 덕목으로 인해, 그 종은 후생에 부유하고 교양있는 집안에서 태어난다. 어느날 그는 거리를 거닐다가 길바닥에서 처량한 신음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전생에 왕이었던 맹인 거지가 두 손을 뻗치며 외치는 소리였다. “제발 불쌍히 여기소서. 신의 이름으로 한 푼만 주세요.”

And because all actions however trivial, are inwardly determined by the Sanskaric ties, creating claims and counterclaims, the rich man is unconsciously drawn towards the beggar and gives him a few copper coins. A king crying out for alms and a servant taking pity on him—what a comedy, what an irony of fate! This is the working of the law of karma, the expression of justice in the world of values. The law of karma is impartial and inexorable.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모든 행위는 내밀하게 산스카라적 연결고리들(Sanskaric ties)에 의해 결정되고, 서로간에 산스카라적 채권(債權)과 채무(債務)를 발생시킨다 ; 그래서 부유한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그 거지에게 이끌려 동전 몇 푼을 주게 된다. 한 푼만 달라고 빌고 있는 왕과 그를 불쌍히 여기는 종이라니, 이 얼마나 우스운 운명의 장난인가! 이것이 바로 카르마 법칙의 작용이며, 가치의 세계(world of values)에서의 정의(justice)의 표현이다. 카르마의 법칙은 공명정대하며, 가차없이 준엄하다.

It knows no concessions, gives no preferences, makes no exceptions. It dispenses justice.

이 법은 한 치의 양도도 모르며, 그 누구도 선호하지 않으며, 어떤 예외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 법은 정의를 집행할 뿐이다.

By the divine law you are shielded from remembrance of past lives, for it would not help you in living your present life but would make it infinitely more complicated and confusing.

신성한 법칙에 의해, 그대는 전생들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보호받는다 ; 그 이유는 현재의 삶을 사는데 전생의 기억이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한없이 복잡하고 혼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For me ‘past’ does not exist. I live in the Eternal Present. I clearly see your formerlives, with all your intimate and intricate relationships with so many individuals. Your various reactions to others seen in the context of your mutual connections in previous lives serves as a mighty joke to me and helps to ease my burden of suffering.

내게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영원한 현재(Eternal Present)에 산다. 나는 그대들의 여러 전생들을 선명하게 본다 ; 그대가 수많은 사람들과 맺었던 밀접하고 복잡한 모든 관계들을 본다. 여러 전생에서 이어져온 상호 관계들의 맥락에서 볼 때 남들을 대하는 그대의 다양한 반응들은 내게 거대한 농담(mighty joke)으로 작용하여, 나의 고통을 더는데 도움을 준다.

Now, I give you anotherexample. It is not an uncommon happening. A Moslem after death is buried in a graveyard. After a few incarnations he is born again in a Moslem family in the same town. It is customary among Moslems to offer prayers for the dead when they visit graves, to pray to God Almighty to save the departed ones. And so it happens that this person stands before his own grave and solemnly prays, ‘May god save his soul!’ What an absurdity! How pathetic!

이제 또다른 예를 하나 들어주겠다. 이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한 이슬람교도가 죽은 후에 공동묘지에 묻혔다. 몇 번의 환생을 거친 후, 그는 똑같은 마을의 이슬람 집안에 다시 태어났다. 이슬람교도에게는 조상의 묘에 방문하여 죽은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관습이 있다. ‘전능한 신이시여, 돌아가신 우리 조상님을 잘 보살펴주소서’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 남자처럼 어쩌다 자신의 묘 앞에 서서 ‘신이시여, 이 분의 영혼을 부탁합니다.’ 하고 엄숙하게 기도하는 일이 생기곤 한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The wheel of births and deaths ceaselessly turns. You are born as a male, as a female; rich, poor; brilliant, dull; healthy, weak; black, white; of different nationalities and of different creeds, in accordance with your inherent and imperative need to have that richness of experience which helps transcend all forms of duality. Side by side with the experience, the paying and receiving of payment of karmic debts go on ad infinitum. How can you clear the account? The Avatar, or the Sadguru, having universal Mind, literally embodies universal life. It is through Him that you become free from this business of karma.

탄생과 죽음의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돌아간다. 그대에게 내재된 긴요한 필요에 따라 그대는 남자나 여자, 부자나 빈민, 영재나 둔재, 건강하거나 허약한 사람, 흑인이나 백인 등 다양한 국적과 다양한 신념을 지닌 사람으로 태어난다. 이러한 풍부한 체험들은 모든 형태의 이원성을 초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체험과 더불어 카르마적 빚의 주고 받음도 무한정 계속된다. 그대가 어찌 이 장부를 정리할 수 있을까? 아바타나 삳구루(Sadguru)는 우주적인 마음(universal Mind)을 지녔기에, 말 그대로 우주적인 삶(universal life) 그 자체를 체현(embody)한다. 따라서 카르마의 소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분(Him)을 통해서다.

The life of everything and everyone is an open book to me. It is like a film show that I enjoy at my own cost. I am the sole Producer of this ever-changing and never-ending film called the universe, wherein I become you in your awake dream state in order to awaken you to the Real AwakeState. When you experience this state you will realize the nothingness of what was your awake dream state which you experience now. This needs my Grace. When my Grace descends it makes you Me.

일체 만물과 만인의 생애는 내게 열린 책과 같다. 이것은 내가 즐기면서도 손해만 보는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나야말로 계속해서 변화하고 결코 끝나지 않을, 이 ‘우주’라 불리는 영화의 단독 제작자다. 그대를 ‘참된 깨어남의 상태(Real Awake State)’로 일깨우기 위해, 그대의 ‘깨어있는 꿈의 상태(awake dream state)’에서 나는 그대가 되었다. 그대가 ‘참된 깨어남의 상태’를 경험하면, 그대가 지금 경험 중인 ‘깨어있는 꿈의 상태’가 ‘아무 것도 아니었음’(nothingness, 無)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나의 은총이 필요하다. 나의 은총이 내려오면, 이때 그 은총은 그대를 나로 만든다.

 

 

유 와 무 29장 – 의심 많은 마음/ 교정본

The Questioning Mind

의심 많은 마음

Your love and faith has drawn you from hundreds of miles to be with me for a few hours. Although I sent you word that you should not ask me any questions I know that some of you are just waiting for the opportunity to ask some. It is the nature of the mind to go on asking. But love asks no questions; it seeks nothing but the will of the Beloved.

그대들의 사랑과 믿음은 나와 고작 몇 시간을 보내기 위해, 수 백 마일의 머나먼 여행길을 그대들이 거쳐 오게 하였다. 내게 어떤 질문도 하지 말라고 미리 통보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대 중 몇 명은 궁금한 것이 있어 질문할 기회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계속해서 질문하는 것은 마음(mind)의 본성이다. 그러나 사랑은 어떠한 질문도 없다; 사랑은 비러벳의 뜻 말고는 그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

Mind wants to know that which is beyond mind. To know that which is beyond mind, mind must go—vanish, leaving no vestige of itself behind. The humour of it is, the mind, which is finite, wants to retain itself and yet know Truth, which is infinite. This is the position of those who seek Truth through intellect. Few grasp this fact, and so most grope and grapple .

마음은 그 자체의 범위를 넘어서 있는 무언가를 알고 싶어 한다. 마음을 초월한 무언가를 알기 위해선 마음이 완전히 없어져야만 한다. – 마음의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는 말이다. 우스운 일은, 한정된 마음이 자신을 버리지 않은 채 무한한 진실을 알겠다고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지성(intellect)으로 진실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입장이다. 이 사실을 간파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대부분이 더듬거리며 악전고투하지만, 허사로 끝나고 만다.

It is easy to ask questions, but it needs past preparation to grasp what I explain. Those who have the authority to ask and the capacity to understand do not ask. They understand that God is un-understandable and beyond the reach of the questioning mind. Every one wants to be happy. Each of you seeks happiness in one way or another invariably to meet with dissatisfaction and disappointment. In reality you are Bliss itself—but what a comedy Illusion stages before you, what game it makes of you to make you aware of it!

질문하기는 쉽지만, 나의 설명을 이해하는 데는 그 전의 준비가 필수적이다. 질문할 권한(authority)과 이해력(capacity to understand)이 있는 자들은 질문하지 않는다. 그들은 신이 이해불가능한 존재며, 의심하는 마음의 영역 너머에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 누구나 행복하길 원한다. 그대들도 각기 나름의 방법으로 (결국은 예외없이 불만족과 실망에 도달하게 될)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대는 지복 그 자체(Bliss itself)이다. – 그러나 그대를 환상에서 일깨우려는 환상의 게임은, 그대 앞에 코미디 같은 허상의 무대를 어찌나 잘 꾸미는지!

One of my lovers has complained, Baba, I have led a pure life yet I have had to suffer much. Perhaps others of you have a similar complaint; but you can only have such because you have no idea of the purpose behind it all. I do not mean that you should invite suffering; I mean, do not fear suffering or blame anyone for it.

나의 러버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바바, 저는 순수한 삶을 살았는데도 고통이 많았습니다.” 그대 중 많은 이에게도 비슷한 불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불평은, 이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근원적 목적을 전혀 알지 못할 때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고통을 일부러 찾아다니라는 뜻은 아니다; 고통을 두려워 말고, 고통에 대해 누구도 탓하지 말라는 뜻이다.

According to the Law that governs the universe, all suffering is your labour of love to unveil your Real Self. In comparison to the Infinite Bliss you experience on attaining the I-am-God state, all the suffering and agony you go through amounts to practically nothing. I am the Source of Infinite Bliss. To draw you to me and to make you realize that you are Bliss Itself, I come amidst you and suffer infinite agony.

온우주를 다스리는 법에 의하면, 그대가 겪는 일체의 고난은 그대의 참나를 드러내기 위한 그대의 사랑의 수고(labor of love)일 뿐이다. ‘나는 신이다의 상태(I-am-God state)’에 도달하여 체험하게 될 무한한 지복(Infinite Bliss)에 비하면, 그대가 겪어온 모든 고통은 실제로 아무것도 아니다. 바로 내가 무한한 지복의 원천이다. 그대를 내게로 끌어당겨 그대가 지복 그 자체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나는 그대들 가운데 와서 무한한 고뇌를 겪고 있다.

I am the Ancient One. When I say I am God it is not because I have thought about it and concluded that I am God – I know it to be so. Many consider it blasphemy for one to say he is God; but in truth it would be blasphemous for me to say I am not God.

내가 바로 고대의 그이(Ancient One)이다. 자진하여 내가 ‘나는 신이다’라고 말할 때에는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는 신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서 그것을 아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이 신’이라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신성모독이라고 여긴다 ; 하지만 사실상 내가 ‘나는 신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신성모독일 것이다.

When you say, I am man, it is not a matter of possibly or perhaps. There is no doubt in your mind. No corroboration is needed and no contradiction could affect it. It is a matter of supreme certainty to you. Suppose you could descend to the level of animal consciousness while atthe same time retaining human consciousness, what you would convey to the animal is, I am a man. I am a man and one day you too shall become man. I have come down to your level of consciousness while retaining Infinite Consciousness; and I repeatedly tell you that I am God in order to help you know that you too are God. I am God and everyone and everything is nothing but God, and one dayeveryone and everything too will become God consciously.

그대가 ‘나는 인간이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어떤 가능성이나 확률의 문제가 아니다. 그대의 마음에는 전혀 의심이 없다. 이 확신에는 추가적인 증거가 필요 없으며, 그 어떤 모순도 이 확신을 흔들지 못한다. 이것은 그대에게 가장 확실한 사안일 것이다. 예를 들어, 그대가 인간의 의식을 지닌 채 동물의 의식 수준으로 내려갔다고 하자; 그대는 동물들에게 ‘나는 인간이다’라고 할 것이다. “나는 인간이며, 동물들 역시 언젠가는 인간이 될 것이다.”라고 얘기할 것이다. 나 역시 무한한 의식을 지닌 채 그대들의 의식 수준으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그대들도 신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해, ‘나는 신이다’라고 그대들에게 거듭 얘기하는 것이다. 나는 신이다; 일체 모든 이와 모든 것도 신이며, 언젠가는 모든 이와 모든 것이 의식적으로(consciously) 신이 될 것이다.

The greatest sin is hypocrisy. He is the greatest hypocrite, who, himself being one, asks others not to be hypocritical. I want you all to be honest. You should not pretend to be what you are not.

가장 큰 죄는 위선이다. 가장 나쁜 위선자는, 자신이 위선자면서 남들에게 위선을 행하지 말라고 하는 자다. 나는 그대들 모두가 정직하길 바란다. 자기의 모습 그대로가 아닌 어떤 척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One of you has said, Baba, I am doing my duty honestly, yet I am not happy. Who isto be blamed for this? Does God take advantage of my weakness? I am happy with your frankness, but you have yet to come to that honesty which will show you that you cannot blame anyone for your condition. Whatever you want to be, that you become. However, if you want to blame anyone blame me, for everything in the universe has come out of me and so I am the only one who can be blamed. But you have no idea of my love and compassion which sustains your very being. In love is infinite compassion, and whatever happens is already tempered by compassion. You cannot understandthis unless you go beyond the reach of mind.

그대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바바, 저는 주어진 제 의무에 충실하고 있지만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누구를 탓할 것인가? 신이 그대의 약점을 이용하는 것인가? 그대의 솔직함에 나는 행복하다 ; 하지만 그대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다른 누구도 탓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수준의 솔직함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그대가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 그대는 그것이 된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를 탓하고 싶다면, 나를 탓하라; 왜냐하면, 우주의 모든 것은 내게서 나왔기 때문에 그 모든 책임은 오직 내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의 존재 자체를 유지시켜 주는 나의 사랑과 자비심에 대해 그대는 전혀 알지 못한다. 사랑 안에는 무한한 자비심이 담겨 있고, 무슨 일이 벌어지건 이미 자비심에 의해 조절된 것이다. 이것은 마음(마인드)의 영역을 넘어서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If at all I did take advantage of your weakness it would be only for your advantage. Weakness is but a degree of strength. As Infinite Life I experience myself as everyone and everything; I enjoy and suffer through you to make you aware that you are Infinite.

만약에라도 내가 그대의 약점을 이용한다면, 그것은 오직 그대에게 이롭게 하기 위해서다. 약점도 일정한 수준의 강점이다. 무한한 생명(Infinite Life)인 나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나자신으로서 체험한다. 그대의 무한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나는 그대를 통해 즐기고 고통받는다.

Why should you notbe happy? What need bind you to unhappiness? Binding is self-created. It can be overcome if you really want to become free. You are your own obstacle to freedom, and merely wishing for freedom is not enough. It is not what you think or say that matters, but what you sincerely feel within. If you want God, you must want God alone. It is possible to get God if you want to experience Truth. And what is the cost? Your own separate existence. When you surrender all falseness you inherit the Truth that you really are.

그대가 행복하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반드시 불행에 매달릴 필요가 있는가? {일체의} 속박은 자신이 창조한(self-created) 것이다. 만일 그대가 진정으로 자유를 원한다면, 극복할 수도 있다. 그대의 자유를 가로막는 방해물은 바로 그대 자신이다; 단지 자유를 바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그대의 생각이나 말이 아니라, 그대가 가슴 깊이 진심으로 느끼는가다. 만일 그대가 신을 원한다면, 오직 신만을 원해야 한다. 진실을 체험하길 원한다면, 신을 얻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때 그 대가(cost)는 무엇인가? 그대의 분리된 존재성(separate existence)이 대가이다. 그대가 모든 허위성을 포기할 때, 진정한 그대 자신인 진실을 상속받게 될 것이다.

Truth is beyond the reach of mind. It is a matter of experience. Mind is very elusive and creates innumerable excuses in order to entrap you. It causes you to say, I cannot live just for God. I have my duty towards my family, towards society, the nation and the world.And so you are pulled more into Illusion than towards Truth.

진실은 마음의 영역 너머에 있다. 진실은 체험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은 아주 교묘하여, 그대를 사로잡기 위해 무수한 핑계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대로 하여금 ‘오로지 신만을 위해서는 살 수 없다’고 말하게 하는 것이 그대의 마음이다. ‘내게는 나의 가족, 나의 사회, 나의 나라, 나의 세계를 위한 의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마음이란 얘기다. 그리하여 그대는 진실보다는 환상을 향해 끌려가는 것이다.

Truth is simple, but Illusion makes it infinitely intricate. The person is rare who possesses an insatiable longing for Truth; the rest allow Illusion to bind them ever more and more. God alone is Real and all else that you see and feel is nothing but a series of nothings.

진실은 단순하다; 그러나 환상은 이것을 무한토록(infinitely) 복잡하게 만든다. 진실에 대한 채울 수 없는 갈망을 지닌 사람은 드물다 ; 나머지 사람들은 환상이 자신들을 갈수록 속박하도록 허용한다. 오로지 신만이 유일한 실재다; 그 외에 그대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은 무(nothing)의 연속에 불과하다.

I am Infinite Knowledge, Power and Bliss. I can make anyone realize God if I choose to do so. You may ask, Why not make me realize God now? But why should it be you? Why not the person next to you or the man in the street, or that bird on the tree, or that stone – who are all one in different forms? The more you love me the sooner you will discard the falsehood you have chosen to hide under that hoodwinks you into believing you are what you are not. I am in all and love all equally. Your love for me will wear through your falseness and make you realize the Self that you truly are.

나는 무한한 지식(Knowledge)이며, 무한한 파워, 무한한 지복이다. 만일 내가 그러고자 한다면, 누구라도 즉각 신을 깨닫게 할 수 있다. 그러면 그대는 “왜 저를 깨닫도록 ->깨닫게 주지 않습니까?” 하고 물어볼 수 있다. 그러나 왜 그대여야 하는가? 그대 옆에 앉아있는 사람이나 길을 거니는 사람, 나무 위의 새나 저 돌은 어떤가? 그들은 모두 본래의 하나가 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 뿐이다. 그대가 나를 사랑하면 할수록, 여태껏 그대로 하여금 자신이 아닌 무엇인가를 자신으로 믿도록 속여왔던 거짓행세(falsehood)/ 허세를 점점 버리게 될 것이다.- 즉, 그대가 언제부턴가 그 뒤에 숨어살기로 결정한 자신의 가면을/ 허세를 결국 벗을 수밖에 없게 된다. 나는 모두의 안에 있으며, 모두를 동등하게 사랑한다. 나를 위한 그대의 사랑은 그대의 거짓을 닳아 없애고는, 진실로 그대인 참나(Self)/ or 그대의 진정한 자신인 참나(Self) 를 깨닫게 할 것이다.

Mere intellectual understanding does not bring God nearer to you. It is love, not questioning, that will bring God to you. Questioning nourishes pride and separateness. So do not ask questions, but strive to become a ‘slave’ of the Perfect Master.

단지 지적인 이해만으로는 신을 가까이 오게 할 수 없다. 신을 그대에게 모셔오는 것은 그대의 사랑이지, 그대의 의심이 아니다. 의심은 자만심(pride)과 개별성(separateness)만을 먹여 살린다. 그러니 질문하는 대신에, 완벽한 스승의 ‘노예’가 되려고 노력하라.

When your life presents an honest and sincere picture of your mind and heart just an embrace from a Perfect Master is enough to quicken the spirit. When I the Ancient One embrace you I awaken something within you which gradually grows. It is the seed of Love that I have sown. There is a long period and great distance between the breaking open of the seed and its flowering and fruiting. Actually the Goal is neither far nor near and there is no distance to cross nor time to count. In Eternity all is here and now. You have simply to become that which you are. You are God, the Infinite Existence.

그대의 삶이 그대 마음과 가슴의 정직하고 진실한 모습을 그대로 비추어줄 때, 완벽한 스승의 단 한 번의 포옹만으로 성령의 강림을 재촉하기에 충분하다.->내면의 영성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고대의 그분(the Ancient One)인 내가 그대를 껴안을 때, 나는 그대 안에 계속해서 자라날 무언가를 일깨운다. 그것은 내가 심은 사랑의 씨앗이다. 그 씨앗이 발아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사실 그 목표에는 멀거나 가까움이 없으며, 거리나 시간도 없다. 영원(eternity)에서는 모든 것이 지금, 여기에 있다. 그대는 단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어야 할 뿐이다. 무한한 존재(Infinite Existence)인 신이 바로 그대 자신이다.

 

 

유 와 무 28장 – 신성적 반응/ 교정본

The Divine Response

신성적 반응 

The moment you try to understand God rather than love Him you begin to misunderstand Him, and your ignorance feeds your ego. Mind cannot reach that which is beyond it. God is infinite and beyond the reach of Mind.

신을 사랑하는 대신에 신을 이해하려는 순간부터 그대는 신을 오해하기 시작하며, 이로 인해 생겨나는 무지(ignorance)가 그대의 에고를 먹여살린다-> 먹여살리게 된다. 마음(mind)은 그 자체를 초월하는 무언가에 미치지 못한다. 신은 마음의 영역 너머에 있는 무한한 존재다.

The Divine Will that brought forth this infinite Illusion expresses itself in all its purity through me to make you turn away from Illusion towards God-consciousness.

이 무한한 환상(infinite illusion)을 불러 일으킨 신성의 뜻/ 신성의 의지(Divine Will)은 자체의 광대한 순수함을 나를 통해 표현하며, 이는 {오로지} 그대가 환상을 등지고 신-의식을 향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Every moment I respond to the whole of creation. My response, being divine, is wholly from love. The many faces of that one response as you see them, are but the reflections of your many- mirrored mind.

매순간마다 나는 전체 천지창조에 반응한다. 나의 즉각적 반응은 신성적이기에 그 전체가 사랑으로부터 솟아나온다. 나의 하나의 반응이 그대 눈에 다양하게 보이는 이유는, 그대의 마음에 많은 거울들이 겹쳐있기 때문이다. (나의 하나의 반응이 그대 눈에 다양하게 보이는 것은, 많은 거울들이 엇갈리게 겹쳐있는 그대 마음의 반영이다.)

You view and judge my actions from your level of understanding and attempt to differentiate them in the light of your own limited standards of values. And so you misinterpret the different shades of myresponse to different people. Being unlimited I am simultaneously on all levels of consciousness; and, as such, in my response I differentiate one from the other solely in the light of their impressions (sanskaras), or the different states of consciousness that the impressions give rise to.

그대는 자신의 이해 수준에서 나의 행위들을 보고 판단하며, 그대만의 한정된 가치 기준에 의해 나의 행위들을 구별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내 반응의 미묘한 차이들을 잘못 해석하여 남들에게 전한다. 무제한적(unlimited) 존재인 나는 모든 의식의 수준에 공존한다. 그리하여 나는 오직 사람들 각자에게 축적된 인상들(impression; 산스카라)만을 기준해서 내지는, 그 인상들이 일으키는 각기 다른 의식 상태에 적합하게 반응한다.

Each action of mine is a response in accordance with the necessity of the recipients on various planes of consciousness. And so by its very nature and magnitude my divine response sometimes appears enigmatic.

나의 모든 반응들은 여러 다양한 의식적 경지에 있는 수취인들의 필요에 따라 나오는 것이다. 그 반응의 본질과 규모에 따라, 나의 신성한 반응들은 때때로 불가사의하게 보인다.

Do not try with your limited mind to understand the significance of my actions, nor try to imitate them. You must not do what I do, but do what I tell you to do. To try to bring my every action within the orbit of your understanding is but to understand the limitations of your own understanding!

그대의 한정된 마음으로 내 행위의 의미를 이해하려 하거나, 흉내내려 하지 말라. 내가 하는대로 하지 말고, 내가 시키는대로 하라. 그대의 이해력의 범위 안에서 내 모든 행위를 이해하려 드는 것은, 오직 자기 이해의 한계를 이해하는 것에 불과하다!

At times when I see you confused I am moved by my compassion and love for you to give an explanation of the reason for a particular action of mine. And so it seems that I am defending my actions by giving explanations for them. And thus is shown your weakness and my strength.

가끔씩 그대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자비심에 이끌려 내 행위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곤 한다. 그렇게 나의 행위에 대한 설명을 함으로써 내 행동을 변호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나의 강점과 그대의 약점을 드러낼 뿐이다.

But remember that despite my explaining the significance of my actions, they will ever remain beyond the range of your knowing. The utter simplicity of my divine Game appears to be highly intricate as soon as you try to understand it through your intellect.

그러나 비록(삭제- 너무 옛날 말투 같아서) 내 행위의 의미에 대한 설명을 아무리 듣는다 해도, 그 행위의 참의미를 그대의 이해의 범위로는 영원히 헤아리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지극히 단순한 나의 신성적 놀이는, 그대의 머리(지능)로 헤아리려는 순간부터 갈수록 복잡해져 간다.

The more you have of my company and receive of my love with an open heart the more whole-heartedly you begin to accept me. And the more you see of me the more convinced you become that you understand me less andless. Exerting yourself to comprehend my divine Game through theprocess of understanding opens up vast fields of speculation in which you wander and arrive sooner or later at a dead-end, finding yourself hopelessly lost.

그대가 나와 함께 하면 할수록 그대가 나의 사랑을 열린 가슴으로 받아들일수록-> 그대가 나와 더 많이 함께 할수록, 나의 사랑을 더 열린 가슴으로 받아들일수록, 그대는 전심으로 나를 받아들이게-> 수용하게(앞에 receive를 ‘받아들인다’고 번역했으니 accept는 다른 단어로 쓰는 것이 좋을 듯 한데요) 된다. 또한 그대가 나를 보면 볼수록-> 그대가 나를 더 자주 볼수록,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확신이 갈수록 늘어간다.-> 더 커져만 간다. 그대의 지적인 이해력으로 나의 신성적 놀이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언젠가 완전히 길을 잃어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될 온갖 억측의 범위만 늘리는 일이다.

If my actions cause confusion it is because of your lack of complete trust. Therefore uproot all doubt and remember well that whatever I do is for the best. All my actions are my divine response born of my divine love.

만일 나의 행위들이 그대에게 혼란을 준다면, 그것은 나에 대한 완전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체의 의심을 뿌리뽑아라; 그리고 내가 어떤 행위를 하든 언제나 최선을 위한 행위라는 사실을 잘 기억하라. 일체 모든 나의 행위는 나의 신성한 사랑에서 비롯된 신성적 반응이다.

 

유 와 무 27장 – 그대가 바치는 복종의 선물 / 교정본

Your Gift of Obedience
그대가 바치는 복종의 선물 

Let your heart be pure. Do not act outwardly what you are not inwardly. Be absolutely honest. God is Infinite Honesty.

그대의 가슴(heart)을 순수하게 지녀라. 그대의 안과 겉이 다르지 않게 행동하라. 완전히 정직하라. 신(God)은 무한한 정직함이다.

Do not pose as being pious, because God is everywhere. God cannot be fooled—so why pose as something you are not?

경건(敬虔)한 척 하지 말라. 신은 모든 곳에 계시기 때문이다. 신은 속일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왜 그대가 아닌 인물의 흉내를 내는가?

I do not want anything else from you but the gift of your obedience. Give me that and you will free yourself from the bondage of ignorance.

나는 그대에게 복종의 선물 외에 그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 이것만 내게 바치면, 그대는 무지의 속박(bondage of ignorance)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유 와 무 25장 – 스스로의 현존을 놓치지 마라 / 교정본

Do Not Absent Yourself

스스로의 현존을 놓치지 마라 or (자신의 현존을 놓치지 마라)

 

He who has eyes but does not see,

He who has ears but does not hear,

He who has a tongue but does not speak, He can see Me as I should be seen, and can know Me as I should be known.

눈이 있는데도 보지 않는 이,

귀가 있는데도 듣지 않는 이,

혀가 있는데도 말이 없는 이,

그이야말로 나를 제대로 볼 수 있고,

나를 제대로 알 수 있네.

This does not mean that you should become inactive. On the contrary it means that you should be constantly alert towards the expressive Beauty of the All-pervading Beloved. On this Hafiz has said, If you want your Beloved to be present, do not absent yourself for one moment from His Presence.

이 말은 그대더러 일체의 활동을 그만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만유에 편재해계신(All-pervading) 비러벳의 드러난(펼쳐진) 아름다움에 끊임없이 깨어있으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 하피즈는 말한다. “그대의 비러벳이 늘 함께 하길 원한다면, 단 한 순간도 그분의 현존(His Presence)을 놓지 말아라.”

The Perfect Master is in everything, and is the Centre of everything. Every one and every thing is therefore equidistant from Him. Though, owing to our own limitations, He appears outwardly to be present at only one place at a time, He is on every plane of consciousness at one and the same time. To see Him as He is, is to see God.

완벽한 스승은 일체 모든 것 안에 있으며, 모든 것의 중심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와 모든 것은 그분과 같은 거리에 있다. 비록 그대 자신의 한계들로 인해 그분이 표면적으로는 어느 한 때 한 장소에만 계신 것 같지만, 그는 모든 의식의 경지들에 일시에 그리고 동시에 공존하신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바로 신 그 자체를 보는 것이다.

So beware lest when the divine Beloved knocks at the door of your heart He finds you absent.

그러니 항시 주의하라. 신성한 비러벳이 그대 가슴의 문을 두드릴 때, 그대가 부재(不在)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