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와 무 00장 메허 바바의 생애 / 교정본

Biographical

메허 바바의 생애


Merwan S. Irani, named Meher Baba (“The Compassionate One”) by His early disciples, was born in 1894 in Poona, India. Between the years of 1913 and 1921, the five Perfect Masters, or Sadgurus, of that time led Him to realize His identity and universal mission as the Avatar of the Age – the God-Man, the Buddha, the Christ. After working intensively with an intimate group of disciples for some years, Baba beganto observe silence in 1925, and throughout the more than four decades of His spiritual activities on Earth, He did not utter a word. From His work in India and the East with the mad, infirm, and poor and with spiritually advanced souls to His contact with thousands of people in the West, Meher Baba has awakened innumerable persons to the quest for higher consciousness and their own ultimate reality.

초기의 제자들로부터 ‘메허 바바'(자비로운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메르완 이라니(Merwan S. Irani)는, 1894년 인도의 푸나에서 태어났다. 1913 ~ 1921년의 기간에 당시의 5명의 완벽한 스승들, 즉 삿구루들은 아바타(Avatar) – 갓맨, 붓다, 그리스도 – 로서의 그의 정체성과 우주적인 임무를 깨닫도록 인도하였다. 바바는 친밀한 제자들로 이루어진 작은 그룹과 몇 년간 집중적인 작업을 한 뒤 1925년부터 침묵을 지키기 시작했으며, 지구에서 영적 작업을 하는 40년이 넘는 동안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인도와 동양에서 미친 사람들과 병약자들, 가난한 사람들과 영적으로 진보된 영혼들을 만나며, 또한 서양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을 접촉하며 수많은 이들이 더높은 의식과 그들 내면의 궁극적인 실재를 추구하도록 일깨웠다.

Throughout the years, Meher Baba indicated that the breaking of His Silence would come in a way and at a time that no one could imagine, and that His “speaking the Word” after the appearance of utter defeat would be His only miracle in this incarnation as God in human form: “When I break My Silence, the impact will jolt the world out of its spiritual lethargy. . . What will happen when I break My Silence is what has never happened before. . . The breaking of My Silence will reveal to man the universal Oneness of God, which will bring about the universal brotherhood of man.”

메허 바바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시간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의 침묵이 깨질 것이라고 수 년에 걸쳐 밝혔으며, 완전한 패배로 보이는 모습 이후에 발언될 ‘그 한 마디’는 신이 인간의 형태로 온 이번의 화신으로서 행하는 유일한 기적이 될 것이라고 얘기하였다; “내가 나의 침묵을 깨는 순간, 그 충격은 영적인 혼수상태에 잠겨있던 세계를 갑자기 뒤흔들어 깨울 것이며… 내가 나의 침묵을 깨는 순간, 이전에는 결코 일어난 적 없었던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나의 침묵을 깨는 것’- 44장에서는 ‘나의 침묵의 타파’라고 했었는데..여기선 이렇게 써도 될까요?은 우주적인 하나됨을 인류에게 드러낼 것이며, 인류의 우주적 형제애를 불러올 것이다.”

Declaring that His work had been completed 100% to His satisfaction and that the results of that work would soon begin to manifest, Meher Baba dropped his body on January 31st, 1969.

메허 바바는 ‘그분의->그의 작업이 100% 만족스럽게 완료됐으며, 머지 않아 그 일의 결과들이 드러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1969년 1월 31일, 자신의 육신을 버리셨다.-> 떨구었다. (앞 문장들에서는 모두 경어체가 아닌데, 이 문장만 존대를 하니 좀 어색한 듯 해서요. 유연님 의견은?)

 

유 와 무 0장 – 영문판(원본) 소개글 / 교정본

Introduction

영문판(원본) 소개글

These Discourses were given over the last two or three years to his disciples by one who needs no introduction because he is the Self of every self and has his home in every heart; but because we have forgotten this he has re-introduced himself to men as the Ancient One who is before all things were and will be after all things have ceased to exist.

이 책의 내용은, 모든 자아(self) 속에 있는 참나(Self)이며 모든 이의 가슴(heart) 속에 거하고 있기에 어떠한 소개도 필요없는 그분이 지난 2~3년 동안 제자들에게 주신 담론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사실을 잊었기 때문에 그는 — 일체 만물이 존재하기 전에도 존재했고 일체 만물이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존재할 고대의 그이(Ancient One)로서 — 자신을 다시 인간->인류는 어떨까요?에게 소개하였습니다.

In earlier times he was known as Jesus the Christ and Gotama the Buddha and Krishna the Lover and Rama the King. This time he is called Meher Baba. Later, after he has dropped his mortal body, men will probably add ‘The Awakener’ after his name, for he has said, I have come not to teach but to awaken.

예전에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알려졌으며, 고타마 붓다, 연인 크리슈나, 제왕 라마로도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메허 바바’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유한한 육신을 버리고 간 이후에, 인류는 아마도 그의 이름 앞에 ‘깨우침을 주는 분/ 일깨우는 분(The Awakener)’이라는 호칭을 붙이게 될 것입니다. ‘나는 가르치러 온 것이 아니라, 일깨우기 위해 왔다’고 그가 말했기 때문입니다.

Meher Baba asserts that he is God, Truth Absolute, and says he has taken form solely because of his compassion for suffering humanity. Man’s suffering is great. Despite the propaganda programmes of ‘things were never better’ man’s suffering is so great that he has devised the means of self-annihilation, to extinguish himself and his seed utterly. The question that now occupies the minds of all thinking men is how this destruction may be averted – for the power for this destruction is in the hands of men who are not morally equipped to be the custodians of such power.

메허 바바는 자신이 신(God)이며 절대적인 진실(Truth Absolute)이라고 단언하며-> 선언하며 (단언은 한국말에서 무언가 자신만 독단적으로 주장하는 듯한 느낌이지만, 선언은 원래 사실인 것을 선포한다는 의미가 있어 ‘선언’이 더 적합할 듯 합니다), 그가 인간의 형태를 취한 것은 오직 인류의 고통에 대한 자비심 때문이라고 얘기합니다. 인간의 고통은 엄청납니다. ‘인류 역사상 지금이 최고의 시기다’라는 선전 전략(propaganda program)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고통은 너무도 극심하여 그들은 자신들과 후세의 씨까지 말려버릴 수 있는 자기 파멸의 수단을 고안해낸 상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온 사람들의 마음을 가득 채운 질문은 ‘이 파멸을 어떻게 막아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며, 그 이유는 이러한 파괴력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사람들이 파괴의 힘을 책임지기에 적합한 도덕성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This thinking is not in clear streams, but is rather as the crosscurrents of an agitated sea seeking a channelled flow toward Something that can guarantee continued existence. With religionists this Something tends to take the form of Someone, the world Saviour which all religions promise.

이러한 생각들은 결코 분명하고 선명한 흐름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험난한 바다에서 흐름을 거스르는 역류(逆流)들이 인간 존재를 보장해 줄 ‘무언가’를 향해 해류를 형성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종교적인 사람에게 있어->삭제 이 ‘무언가’는 모든 종교에서 약속하는 세계의 구세주로서, 어떤 인간의 형태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Meher Baba says he is this Something or Someone. ‘I am the One whom so many seek and so few find.’

메허 바바는 자신이 ‘그 무언가’ 또는 ‘그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많은 이들이 찾지만, 극소수만이 발견하는 그분(the One)이 바로 나다.’라고 말합니다.

Naturally many will not accept this assertion. Indeed, while all men are praying for Someone or Something to save the world, some will be praying that this Man be saved from the gigantic deception of believing he is God!

당연히 많은 사람들은 그의 이러한 주장을->선언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모든 사람이 ‘그 무언가나 누군가가 이 세상을 구원하기를’ 기도하고 있는 가운데, ‘자신을 신이라고 믿는 이 사람을 엄청난 기만으로부터 구제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을 것입니다.

But Truth has never waited for us to accept It, but, as the Wind listeth where It will, proclaims Itself according to Its own sweet will and whim. It is as natural for God-Man to assert, I am God, as it is for us to assert, I am man. And it would be as laughable for GodMan to say, I am not God, as it would be for us to say, I am not man. Our ignorance of divine Truths is colossal and our ideas about God are so elementary.

그러나 진실(Truth)은 우리의 수용을 기다린 적이 결코 없습니다; 바람이 원하는대로 이리저리 불듯이, 진실도 자체의 달콤한 뜻과 일시적인 충동대로 자신을 선포합니다. 우리가 ‘나는 인간이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신인간(God-Man)에게도 ‘내가 신이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신인간이 ‘나는 신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인간인 우리가 ‘나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처럼 우스운 일입니다. 신성적 진실들에 대한 우리의 무지는 엄청나며, 신에 대해 우리가 지닌 개념들은 너무도 초보적입니다.

It takes some courage to accept God as God-Man, for acceptance means surrender of one’s individual ego-life. However, since our cherished lives are no longer ours but are in the hands of the first one who will give an order for buttons to be pressed, surrender is not so difficult!

신을 신인간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사람의 개체적인 에고의 삶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삶이 더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게 되고, 최후의 버튼들을 누르게 할 명령 체계의 최상위에 있는 분에게 내맡기는 것이기에, 포기가 그리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But more courageous than those who surrender themselves to God-Man would seem to be those, who, expecting a Someone or a Something, remain true to their expectation by denying the occurrence of the Advent of God-Man because they cannot prove he is not what he proclaims he is.

그러나 신인간에게 항복하는 이들보다 더 용기있는 사람들은, ‘그분이 신인간이 아니다’라는 것을 입증하는 데 실패한 나머지 신인간의 출현을 아예 부정함으로써, 여전히 그 누군가나 무언가를 기다리며 자신의 기대에 충실한 채 남아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And perhaps more courageous than these are those who continue to follow the westering false lights of material progress while the beautiful silent Person of God has already lit the east-sky with the Dawn of a New Humanity . Presently the Sun of his Word will break across the world, and his Glory will be manifest to all.

그러나 이들보다 더 용기있는 사람들은, 아름답고 말없는 신의 사람이 이미 신-인류->신인류(New Humanity)의 여명으로 동쪽의 하늘을 밝히셨는데도, 물질적 진보를 주장하는 서양문명의 거짓된 빛을 계속해서 따르고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제 ‘그 한마디의 말씀'(his Word)의 태양이 온세계를 뒤덮을 것이며, 그분의 영광이 모두에게 발현될 것입니다.

Meanwhile the Discourses in this book—dictated in silence by Meher Baba through hand-signs – may be said to be indications of the One Word of Truth that he will utter when he breaks his Silence and manifests his Godhood to men. The Everything and The Nothing constitutes a preparation of mind and heart to receive that One Word of Truth when he speaks it.

메허 바바가 침묵 속에서 손동작(手話)으로 남겨주신 이 담론들(Discourses)은, 차후에 그가 침묵을 깨고 인류에게 자신의 신격을 드러낼 때 발언할 ‘그 한마디의 진실’(One Word of Truth)의 사전적 암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와 무>, 이 책의 구성 내용은 그분이 침묵을 깨고 말씀하실 ‘그 한마디의 진실’을 우리의 마음과 가슴이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Francis Brabazon 1st November, 1962

프랜시스 브라바존, 1962년 11월 1일

 
* 전체적으로 제자인 프랜시스가 바바에 대해 ‘존칭어’로 존대말 어투인데요. ‘그 분, 남겨주신, 말씀하실 ‘ 등등.. 이렇게 존대말투로 가야겠지요? 바바가 스스로 쓴 게 아니라 제자가 쓴 것이므로.. 반면, 바바의 생애 부분은 존칭어 없이 객관적으로 바꾸면 좋겠습니다.

유 와 무 65 장 – 인간화된 무지 / 교정본

Ignorance Personified

인간화된 무지


God is Indivisible One, and is indivisibly in each one and everything.

신은 불가분한-> 나뉠 수 없는(뒤에 불가분이 나오므로, 앞에는 다른 표현으로) 하나(One)다; 신은 각각의 모든 이와 모든 것 안에 불가분하게 있다.

What is it then that causes apparent divisions? There are no divisions as such, but there is an appearance of separateness because of ignorance. This means that everything is of ignorance and that every one is Ignorance personified.

그렇다면 현상적(apparent) 분리됨은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 것인가? 사실 분리 같은 것은 없다; 다만 무지로 인해 분리된 듯한(apparent) 모습만 있는 것이다. 이는 곧 ‘모든 것이 무지이며, 모든 사람이 인간화 무지(ignorance personified)’라는 것을 의미한다.

A drop in an ocean is not separate from the ocean. It is a bubble over the drop that gives it an appearance of separateness, but when the bubble bursts the drop is not, and the indivisible ocean is.

바다 속의 물방울은 바다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 물방울을 덮은 거품이, 분리된 듯한 모습을 주는 것 뿐이다-> 모습을 띠게 할 뿐이다.(띠다: 빛깔이나 색채 모양 따위를 가지다, 나타내다) ; 그러나 언젠가 그 거품이 터지게 되면 -> 터지면, 물방울은 사라지고 불가분한 바다만이 남는다.

When the bubble of ignorance bursts the self realizes its oneness with the indivisible Self.

무지의 거품이 터질 때, 자아는 ‘불가분한 참나'(indivisible Self)와 자신이 하나임(oneness)을 깨닫는다.

 

유 와 무 64장 – 용서하고 잊어 버려라 / 교정본

Forgive and Forget

용서하고 잊어버려라

People ask God for forgiveness. But since God is everything and everyone, who is there for Him to forgive? Forgiveness of the created was already there in His act of creation. But still people ask God’s forgiveness, and He forgives them. But they, instead of forgetting that for which they asked forgiveness, forget that God has forgiven them, and, instead, remember the things they were forgiven—and so nourish the seed of wrongdoing, and it bears its fruit again. Again and again they plead for forgiveness, and again and again the Master says, I forgive.

사람들은 신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신은 모든 것이고 모든 사람이기 때문에, 용서할 대상이 없지 않은가? -> 그러나 신은 모든 것이고 모든 사람인데, 그에게 용서할 누군가가 있겠는가? 창조된 존재들에 대한 용서는 이미 그분의 창조 행위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신의 용서를 구하고, 신은 그들을 용서해준다; 그러나 사람들은 신이 그들을 용서했음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대신 자신이 용서받았던 내용들만을 기억한다 — 이렇게 그들은 잘못된 행동의 씨앗에 물을 주고, 그 씨앗은 커서 다시 잘못의 열매를 맺게 된다. 그래도 그들은 계속해서 용서를 거듭 간청하며, 마스터는 계속해서 ‘용서한다’고 말한다.

But it is impossible for men to forget their wrongdoings and the wrongs done to them by others. And since they cannot forget, they find it hard to forgive. But forgiveness is the best charity. (It is easy to give the poor money and goods when one has plenty, but to forgive is hard; but it is the best thing if one can do it.)

인간은 자신이 잘못한 일들과, 남들이 자신에게 잘못한 일들을 잊지 못한다. 잊을 수 없기 때문에 용서는 그만큼 어려워진다. 하지만, 용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뒤 괄호에도 설명이 되어 있으므로 삭제해도 될 듯요. 최고의 자선 행위다. (많이 가진 사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것은 쉽지만, 용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용서야말로 최고의 자선이다.)

Instead of men trying to forgive one another they fight. Once they fought with their hands and with clubs. Then with spears and bows and arrows. Thenwith guns and cannon. Then they invented bombs and carriers for them. Now they have developed missiles that can destroy millions of other men thousands of miles away, and they are prepared to use them. The weapons used change, but the aggressive pattern of man remains the same.

인간은 서로를 용서하려는 대신에 싸운다. 일단 손과 몽둥이로 싸우게 되자, 얼마 후에 창과 활로 싸웠고, 다음에는 총과 대포로 싸웠다. 그 후에는 폭탄과 항공모함을 발명하였다. 이제 인간은 수천 마일 떨어져 있는 사람들 수백만 명을->수백만을 죽일 수 있는 미사일들을 개발했으며, 그것을 사용하기 위한 준비도 마쳤다. 무기는 변했지만, 인간의 공격적인 성향은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 있다.

Now men are planning to go to the moon. And the first to get there will plant his nation’s flag on it, and that nation will say, It is mine. But another nation will dispute the claim and they will fight here on this earth for possession of that moon. And whoever goes there, what will he find? Nothing but himself. And if people go on to Venus they will still find nothing but themselves. Whether men soar to outer space or dive to the bottom of the deepest ocean they will find themselves as they are, unchanged, because they will not have forgotten themselves nor remembered to exercise the charity of forgiveness.

이제 인간은 달에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리고 처음으로 달에 도착하는 나라는 그 나라의 국기를 꼽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달은 우리 것이다”라고. 그러나 또다른 나라가 나타나 그 주장에 반박할 것이고, 두 나라는 달의 소유권을 놓고 이 지구에서 싸우게 될 것이다.* 달에 간 사람이 누구든간에, 그는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자기 자신 말고는 찾을 것이 없을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금성에 간다 해도, 그들 자신 밖에는 아무 것도 찾지 못할 것이다. 인간이 우주로 날아 오르거나 가장 깊은 바다의 바닥까지 잠수한다 해도, 변하지 않은 자신밖에는 찾지 못할 것이다-> 자신만을 발견할 것이다.(앞에 두 문장에서 ‘찾지 못할, 찾을 것이 없을.. ‘계속 이런 문장이어서 다른 형식으로);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자신은 잊지 못하면서도, 용서를 실천하는 자선행위는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Supremacy over others will never cause a man to find a change in himself; the greater his conquests the stronger is his confirmation of what his mind tells him—that there is no God other than his own power. And he remains separated from God, the Absolute Power.

남을 지배하는 것으로는 결코 자신 안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인간은 더 큰 것을 정복하면 할수록 – 자신의 파워 외에는 신이 따로 없다는 마음(mind)의 주장을 – 더 확고하게->확고히 믿게 된다. 따라서 그는 절대적 파워 자체인 신으로부터 동떨어진 채 남게 된다.

But when the same mind tells him that there is something which may be called God, and, further, when it prompts him to search for God that he may see Him face to face, he begins to forget himself and to forgive others for whatever he has suffered from them.

그러나 언젠가 그 똑같은 마음이 ‘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라고 말하게 되면, 그 똑같은 마음이 신의 얼굴을 직면하고파 신을 찾으라고 부추기는 때가 오면, 그는 자기->삭제 자신을 잊기 시작하게 되고 그에게 어떤 고통을 끼친 사람일지라도 용서하게 될 것이다.

And when he has forgiven everyone and has completely forgotten himself, he finds that God has forgiven him everything, and he remembers Who, in reality, he is.

그리고 그가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자신마저 완전히 잊게 되면, 그는->앞에 주어가 나와있으므로 두번 안 써줘도 될 듯요. 신께서 이미 그의 모든 것을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실재(reality)의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역자주 – 이 말은 메허 바바의 미래에 대한 예언은 아님. 다만 번역상 예언처럼 기술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