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와 무 30장 – ‘깨어있는 꿈의 상태’에서 ‘참된 깨어남의 상태’로

Awake Dream State to Real Awake State

‘깨어있는 꿈의 상태’에서 ‘참된 깨어남의 상태’로


The First Song of the Infinite is the beginning of Creation. It brings about the apparent descent of the Infinite into the domain of multiple duality. Duality implies unending sufferings.

무한함의 첫 노래가 천지창조의 시작이다. 이 첫 노래는 ‘다양한 이원성의 영역'(domain of multiple duality)으로 무한함의 현상적(apparent) 하강을 초래한다. 이원성에는 끝없는 고통이 수반된다.

I am eternally happy for I know that I am the Infinite One. I alone exist; there is nothing besides me; all else is Illusion. Simultaneously, I suffer eternally.

나는 영원토록 행복하다; 이것은 내가 무한한 그이(The Infinite One)임을 알기 때문이다. 오로지 나만이 존재한다; 나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 외의 모든 것은 환상이다. 그런 동시에 나는 영원히 고통받는다.

I, as myself, am free. But in you, as you, I get myself bound. I knowingly suffer through you, to make you free from bindings. This is my crucifixion. Your experience of suffering is because of sheer ignorance; and your ignorance is my suffering.

내 자신으로서의 나는 자유롭다. 그러나 그대 안에 있는, 그대로서의 나는 자신을 속박한다. 그대를 속박에서 풀어주기 위해, 나는 알면서도 그대를 통해 고통받는다. 이것이 나의 십자가의 형벌(crucifixion)이다. 그대가 고통을 겪는 이유는 순전히 무지(sheer ignorance) 때문이며, 그대의 무지가 바로 나의 고통이다.

You are sitting here before me, each one asserting his separate existence from the other. You come from different levels of society. You possess varied physical and mental aptitudes and abilities. Through the ego-mind you have become individualized, and the One Indivisible Soul is infinitely divided. But the Soul never becomes divided, it ever remains One and the Same.

그대들은 내 앞에 앉아서 각자의 분리된 존재성을 행사하고 있다. 그대들은 사회의 각계 각층에 속해 있다. 그대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다양한 소질과 능력을 지녔다. 에고-마인드(ego-mind)를 통해 그대들은 개체화되었고, 그리하여 하나의 불가분한 영혼이 무한히 나뉘어졌다. 그러나 영혼(Soul)은 결코 나뉘어질 수 없다; 영혼은 영원히 ‘동일한 그 하나’(One and the Same)로 남는다.

You are really the Infinite Soul but you identify yourself with a finite mind and so have to suffer. You have your moments of happiness and sorrow. Whether your pains outweigh your pleasures or your pleasures outweigh your pains, you worry all day about something or the other until your finite existence retreats at night into sound sleep. There you unconsciously merge into the Infinite.

실제로 그대는 무한한 영혼(Infinite Soul)이지만, 자신을 한정된 마음(finite mind)과 동일시하기에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대에게는 행복한 순간도 있고, 슬픈 순간들도 있다. 그대의 고통이 기쁨보다 크건 기쁨이 고통보다 크건, 그대의 한정된 존재성이 밤에 깊은 잠에 들 때까지 그대는 온종일 무언가를 걱정한다. 그러다 깊은 잠에 들어서야, 무의식적으로나마 무한 속으로 녹아든다.

In Sound sleep you completely forget yourself and your surroundings, your thoughts and emotions around which are ranged your ideas of imagined happiness and sufferings. But this respite is short-lived.

깊은 잠에 빠지면 그대는 자신과 주변 환경을 완전히 잊게 되며, 그대가 상상하는 ‘행복과 고통’이라는 개념의 영역에서 맴도는 모든 생각과 감정들도 잊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휴식은 일시적이다.

From the sound-sleep state you come down to the normal awake state, and as you come you have necessarily to pass through a dream state even though it be for only the fraction of a second.

깊은 수면의 상태에서 일상적으로 깨어있는 상태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그대는 일초보다 짧은 순간일지라도 반드시 꿈의 상태를 거쳐야 한다.

Now, at one time you have a very happy and sweet dream in which your ideal of happiness is fulfilled. But being a dream it lasts only a little while, and waking pains you so much that you sigh, What a pity it was only a dream!

자, 어떤 날은 그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행복이 실현된 정말로 기쁘고 달콤한 꿈을 꿀 때가 있다. 그러나 꿈인 만큼 아주 잠시 동안만 지속된다. 오히려 그대가 꿈에서 깨었을 때는, 단지 꿈에 불과했다는 안타까움에 심한 고통을 느끼며 한탄하게 된다.

At some other time you have a horrible dream in which you experience great suffering. Time seems an eternity. As you wake you feel such relief that you say, Thank God it was only a dream after all.

또 다른 어떤 날은, 극심한 고통을 경험하는 악몽을 꾼다. 이때 시간은 영원한 듯 느껴진다. 꿈에서 깨면 그대는 정말 안도하며, ‘다행히도 꿈이었을 뿐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In the dream state you enjoy and suffer. When you wake you realize that your enjoyment and suffering was nothing but a dream—an illusion. But know that your present state of consciousness which you call being awake, when compared to the Real Awake State, is nothing but a dream state. Your life is a dream within the mighty Dream of God which is the Universe.

꿈의 상태에서 그대는 즐겁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꿈에서 깨었을 때, 그대는 꿈속의 즐거움이나 고통이 모두 꿈에 불과한 환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대가 깨어있다고 말하는 현재의 의식 상태도 ‘참된 깨어남의 상태’(Real Awake State)에 비하면 꿈의 상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라. 그대의 삶은, 이 우주 자체인 신이 꾸는 거대한 꿈(mighty Dream of God) 안에 담긴 작은 꿈이다.

From your present awake dream state you have to go through many sleeps of deaths before you get established in the Real Awake State. After ordinary sleep you awake in the same surroundings; after death you arise in a new environment. But this does not bring the end of your suffering, for the Thread of Action (Karma) continues unbroken and unfailingly keeps on determining your life. The humour of it is new settings create new worries. The grip of illusion is so tight and deceitful that you cannot help worrying. So your life in your awake dream state becomes an endless chain of suffering.

현재 그대가 속한 ‘깨어있는 꿈의 상태’(awake dream state)에서 ‘참된 깨어남의 상태’(Real Awake State)로 확립되기 전에, 그대는 수많은 죽음의 잠들(sleeps of death)을 거쳐야 한다. 일상적인 잠을 잔 뒤에는 자기 전과 같은 환경에서 깨어난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환경에서 깨어난다. 그러나 이것도 그대의 고통을 끝내진 못한다. 왜냐하면 행위의 맥락(Thread of Action), 즉 카르마(karma)가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그대의 삶을 결정해가기 때문이다. 재밌는 일은, 새로운 환경마다 새로운 걱정거리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거짓된 환상의 손아귀에 꽉 붙들려 속으면서, 그대는 걱정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환상의 손아귀는 너무도 기만적이고 꽉 붙들기에, 그대는 걱정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깨어있는 꿈의 상태’에서 그대의 삶은, 끝없는 고통의 연속이 된다.

You, as gross body, are born again and again till you realize your Real Self. You, as mind, are born only once and die only once; in this sense you do not reincarnate. The gross body keeps changing, but mind (mental body) remains the same throughout. All impressions (sanskaras) are stored in the mind. The impressions are either to be spent or counteracted through fresh karma in successive incarnations. Buddha’s wheel denotes the cycle of births and deaths. The wheel goes on in its ceaseless round. It lifts you to the heights; it brings you down to the depths.

자신의 참나(Real Self)를 깨달을 때까지, 그대는 물질적 신체(육체, gross body)로 거듭해서 태어난다. 그러나 그대의 마음(mind)은 오직 한 번 태어났다가 한 번 죽는다; 이런 의미에서, 그대는 환생하지 않는다. 육체(물질적 신체)는 계속해서 바뀌지만, 마음(정신적 신체)은 언제나 같다. 모든 인상들(산스카라)은 마음 안에 저장된다. 그 인상들은 잇따라 이어지는 환생 속에서 다 소모되거나, 새로운 까르마를 통해 상쇄된다. 붓다의 윤회의 수레바퀴는 거듭되는 생과 사의 순환을 나타낸다. 윤회의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계속해서 돌아간다. 그것은 그대를 최고 정점으로 들어 올렸다가는,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시킨다.

To show you how karma persists as a connecting link and a life-determining factor of future lives I give you an example. There is a king who has vast possessions. But he is a worthless king. He spends all his energy and money in selfish pursuits and luxuries and has no care for his subjects. In his next birth he is born blind and becomes a beggar and thus compensates for his wrong doings.

후생(後生)에 대해 카르마가 어떻게 결정 요인이 되고 연결 고리로 지속되는지, 예를 들어주겠다. 한 부유한 왕이 있다. 그러나 그는 쓸모없는 왕이다. 그 왕은 온갖 사치품과 이기적인 소유에 온 신경과 돈을 허비하고, 백성들은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는 다음 생에 맹인(盲人)으로 태어나 결국 거지가 되어, 전생의 그릇된 행동을 갚게 된다.

Now this king has a servant who is honest and faithful and hard- working. In his next birth because of his merits he is born into a cultured and well-to-do family. One day, when he is going along the street he hears a pitiable cry from the pavement. It is from the blind beggar who was the king in his previous life crying aloud with outstretched hands, Have pity. Give me a penny in the name of the Lord.

이 왕에게는 정직하고 신실하며 성실한 종이 있다. 이러한 덕목으로 인해, 그 종은 후생에 부유하고 교양있는 집안에서 태어난다. 어느날 그는 거리를 거닐다가 길바닥에서 처량한 신음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전생에 왕이었던 맹인 거지가 두 손을 내밀며 외치는 소리였다. “제발 불쌍히 여기소서. 신의 이름으로 한 푼만 주세요.”

And because all actions however trivial, are inwardly determined by the Sanskaric ties, creating claims and counterclaims, the rich man is unconsciously drawn towards the beggar and gives him a few copper coins. A king crying out for alms and a servant taking pity on him—what a comedy, what an irony of fate! This is the working of the law of karma, the expression of justice in the world of values. The law of karma is impartial and inexorable.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모든 행위는 내밀하게 산스카라적 연결고리들(Sanskaric ties)에 의해 결정되고, 서로간에 산스카라적 채권(債權)과 채무(債務)를 발생시킨다; 그래서 부유한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그 거지에게 이끌려 동전 몇 푼을 주게 된다. 한 푼만 달라고 빌고 있는 왕과 그를 불쌍히 여기는 종이라니, 이 얼마나 우스운 운명의 장난인가! 이것이 바로 카르마 법칙의 작용이며, 가치의 세계(world of values)에서 정의(justice)의 표현이다. 카르마의 법칙은 공명정대하며, 가차없이 준엄하다.

It knows no concessions, gives no preferences, makes no exceptions. It dispenses justice.

이 법은 한 치의 양도도 모르며, 그 누구도 선호하지 않으며, 어떤 예외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 법은 정의를 집행할 뿐이다.

By the divine law you are shielded from remembrance of past lives, for it would not help you in living your present life but would make it infinitely more complicated and confusing.

신성한 법칙에 의해, 그대는 전생들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보호받는다; 그 이유는 현재의 삶을 사는데 전생의 기억이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한없이 복잡하고 혼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For me ‘past’ does not exist. I live in the Eternal Present. I clearly see your former lives, with all your intimate and intricate relationships with so many individuals. Your various reactions to others seen in the context of your mutual connections in previous lives serves as a mighty joke to me and helps to ease my burden of suffering.

내게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영원한 현재(Eternal Present)에 산다. 나는 그대들의 여러 전생들을 선명하게 본다; 그대가 수많은 사람들과 맺었던 밀접하고 복잡한 모든 관계들을 본다. 여러 전생에서 이어져온 상호 관계들의 맥락에서 볼 때 남들을 대하는 그대의 다양한 반응들은 내게 거대한 농담(mighty joke)으로 작용하여, 내 고통의 짐을 더는 데 도움을 준다.

Now, I give you another example. It is not an uncommon happening. A Moslem after death is buried in a graveyard. After a few incarnations he is born again in a Moslem family in the same town. It is customary among Moslems to offer prayers for the dead when they visit graves, to pray to God Almighty to save the departed ones. And so it happens that this person stands before his own grave and solemnly prays, ‘May god save his soul!’ What an absurdity! How pathetic!

이제 또 다른 예를 들어주겠다. 이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한 이슬람교도가 죽은 후에 공동묘지에 묻혔다. 몇 번의 환생을 거친 후, 그는 같은 마을의 이슬람 집안에 다시 태어났다. 이슬람교도에게는 조상의 묘에 방문하여 죽은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관습이 있다. ‘전능한 신이시여, 돌아가신 우리 조상님을 잘 보살펴주소서’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 남자처럼 어쩌다 자신의 묘 앞에 서서 ‘신이여, 이 분의 영혼을 구원해주소서’ 하고 엄숙하게 기도하는 일이 생기곤 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The wheel of births and deaths ceaselessly turns. You are born as a male, as a female; rich, poor; brilliant, dull; healthy, weak; black, white; of different nationalities and of different creeds, in accordance with your inherent and imperative need to have that richness of experience which helps transcend all forms of duality. Side by side with the experience, the paying and receiving of payment of karmic debts go on ad infinitum. How can you clear the account? The Avatar, or the Sadguru, having universal Mind, literally embodies universal life. It is through Him that you become free from this business of karma.

탄생과 죽음의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돌아간다. 그대에게 내재된 긴요한 필요에 따라 그대는 남자나 여자, 부자나 빈민, 영재나 둔재, 건강하거나 허약한 사람, 흑인이나 백인 등 다양한 국적과 다양한 교리를 지닌 사람으로 태어난다. 이러한 풍부한 체험들은 모든 형태의 이원성을 초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체험과 더불어 카르마적 빚의 주고 받음도 무한정 계속된다. 그대가 어찌 이 장부를 정리할 수 있을까? 아바타나 삿구루는 우주적인 마음을 지녔기에, 말 그대로 우주적인 삶 자체를 담고(체현, embody)있다. 따라서 카르마의 소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분을 통해서다.

The life of everything and everyone is an open book to me. It is like a film show that I enjoy at my own cost. I am the sole Producer of this ever-changing and never-ending film called the universe, wherein I become you in your awake dream state in order to awaken you to the Real Awake State. When you experience this state you will realize the nothingness of what was your awake dream state which you experience now. This needs my Grace. When my Grace descends it makes you Me.

일체 만물과 만인의 생애는 내게 열린 책과 같다. 이것은 내가 즐기면서도 손해만 보는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나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결코 끝나지 않을, 이 ‘우주’라 불리는 영화의 단독 제작자(Producer)다. 그대를  ‘참된 깨어남의 상태'(Real Awake State)로 일깨우기 위해, 그대의 ‘깨어있는 꿈의 상태'(awake dream state)에서 나는 그대가 되었다. 그대가 ‘참된 깨어남의 상태’를 경험하면, 그대가 지금 경험 중인 ‘깨어있는 꿈의 상태’가 ‘아무것도 아니었음’(nothingness, 無)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나의 은총이 필요하다. 나의 은총이 내려오면, 이때 그 은총은 그대를 나로 만든다.

 

Comments

  1. maya49 says

    30. Awake Dream State to Real Awake State
    깨인 꿈의 상태에서 참으로 깨인 상태로
    -> ‘깨어있는 꿈의 상태’에서 ‘참된 깨어남의 상태’로

    The First Song of the Infinite is the beginning of Creation. It brings about the apparent descent of the Infinite into the domain of multiple duality. Duality implies unending sufferings.

    무한함(Infinite)의 첫노래가 바로 천지창조의 시점(발단)이다. 이 노래가 각종 이원성의 영역(domain of multiple reality)으로 그 무한함의 외견상(표면상: apparent) 하강(descent)을 촉발한다. 이원성(duality)에는 {필이} 끝 없는 고난이 수반(내포)된다.

    -> 무한함(Infinite)의 첫 노래가 천지창조의 시작이다. 이 첫 노래가 무한함을 다양한 이원성의 영역(domain of multiple duality)으로 끌어내리는 듯 /or 하강(descent)시키는 듯 보인다(apprent). 이원성(duality)은 {반드시} 끝없는 고통을 수반한다.

    I am eternally happy for I know that I am the Infinite One. I alone exist; there is nothing besides me; all else is Illusion. Simultaneously, I suffer eternally.

    나는 영원토록 행복하다; 왜냐? 내가 그 무한한 그이(The Infinite One)라는 사실을 알기(know) 때문이다. 오로지 나 만이 존재한다; 나 외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일체의 나머지는 다 환상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는 영원한 고난을 격는다.

    -> 나는 영원토록 행복하다. ; 내가 무한한 그이(The Infinite One)라는 사실을 알기(know) 때문이다. 오로지 나만이 존재한다; 나 외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외의 다른 것은 환상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는 영원히 고통받는다.

    * 한국말에서, 보통 고난은, 나를 괴롭게 만드는 어떤 외부적 사건이나 시련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요.
    내가 주관적으로 몸이나 마음의 괴로움을 겪는 것에 대해서는,‘고통’이란 단어를 씁니다. 그래서 고통이 더 자연스러울 듯 하네요…

    I, as myself, am free. But in you, as you, I get myself bound. I knowingly suffer through you, to make you free from bindings. This is my crucifixion. Your experience of suffering is because of sheer ignorance; and your ignorance is my suffering.

    본인 자체로써의 나는 자유롭다. 그런대 그대 속에, 그대 로써 의 나는 자신을 속박한다. 그대의 속박으로부터 그대를 풀어주기 위해서 나는 알면서도 일부러 그대를 통해 고난을 격는다. 바로 이것이 나의 십자가의 형벌(책형: crucifixion)이다. 그대가 고난(고통)을 체험하게 되는 이유는 유독 그대의 까마득한 무지(sheer ignorance) 때문이며, 그대의 무지가 바로 나의 고난(고통)이다.

    -> 나는 나자신으로서 자유롭다. 그러나 그대 안에, 그대로서의 나는 자신을 속박한다. 그대를 속박에서 풀어주기 위해, 나는 알면서도 그대를 통해 고통받는다. 이것이 나의 십자가의 형벌(crucifixion)이다. 그대가 고통을 겪는 이유는 까마득한 무지(sheer ignorance) 때문이며, 그대의 무지가 바로 나의 고통이다.

    You are sitting here before me, each one asserting his separate existence from the other. You come from different levels of society. You possess varied physical and mental aptitudes and abilities. Through the ego-mind you have become individualized, and the One Indivisible Soul is infinitely divided. But the Soul never becomes divided, it ever remains One and the Same.

    그대들은 내 앞에 안자서 각자의 개별적 존재성을 행사(행세: asserting)하고 있다. 그대들은 사회의 각계계층 사람들이다. 그대들은 여러 다양한 소질들과 능력들을 지녔다. 그대는 애고-마인드(Ego-mind)를 통해 개별화 된것이며, 그리하여 단 하나인 그 분리불가한 영혼이 무한하게 나누어진 것이다. 그러나 영혼은 나눌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혼은 영원히 변함없이 ‘동일한 그 하나’(One and the Same)로 남는다.

    -> 그대들은 내 앞에 앉아서 각자의 분리된 존재성을 행사하고 있다. 그대들은 사회의 각계 각층에 속해 있다. 그대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다양한 소질과 능력을 지녔다. 에고-마인드(ego-mind)를 통해 그대들은 개체화되었고, 그리하여 하나의 불가분의 영혼이 무한히 나뉘어진 것이다. 그러나 영혼(Soul)은 결코 나뉘어질 수 없다.; 영혼은 영원히 ‘동일한 그 하나’(One and the Same)로 남는다.

    You are really the Infinite Soul but you identify yourself with a finite mind and so have to suffer. You have your moments of happiness and sorrow. Whether your pains outweigh your pleasures or your pleasures outweigh your pains, you worry all day about something or the other until your finite existence retreats at night into sound sleep. There you unconsciously merge into the Infinite.

    실재로 그대는 무한한 영혼이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을 한정된 마인드(finite mind)로 삼기때문에 고통을 격게 되는 것이다. 그대는 행복할 때도 있고 서러울 때도 있다. 그대의 고통이 기쁨을 능가하건, 기쁨이 고통을 능가하건, 결국 그대는 그대의 한정적 존재성(finite existence)이 저녁에 깊은 잠에들때까지 종일 그 무엇인가를 두루 걱정하고 있다. 그러다 잠이 들때서야 무의식적으로 그 무한함과 합일(merge)된다.

    > 실제로 그대는 무한한 영혼이지만, 자신을 한정된 마음(finite mind)과 동일시하기에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대에게는 행복한 순간도 있고, 슬픈 순간도 있다. 그대의 고통이 기쁨보다 크건 고통이 기쁨보다 크건, 그대의 한정된 존재성(finite existence)이 밤에 깊은 잠에 들 때까지 그대는 온종일 무언가를 걱정한다. 그러다 깊은 잠에 들어서야, 무의식적으로 무한(Infinite)과 합일(merge)된다.

    In Sound sleep you completely forget yourself and your surroundings, your thoughts and emotions around which are ranged your ideas of imagined happiness and sufferings. But this respite is short-lived.

    깊은 잠에 들면 그대는 그대 자신과 그대의 주위한경을 완전히 잊으며, 그대가 생각하는 상상의 행복함과 상상의 고통의 개념적 범위에 갇혀 맴도는 온갖 그대의 생각과 느낌들마저도 다 완전히 잊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휴식은 일시적일 뿐이다.

    -> 깊은 잠에 빠지면 그대는 자신과 주변 환경을 완전히 잊게 되며, 그대가 상상하는 행복과 고통이란 개념의 영역에서 맴도는 모든 생각과 감정들도 잊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휴식은 일시적일 뿐이다.

    From the sound-sleep state you come down to the normal awake state, and as you come you have necessarily to pass through a dream state even though it be for only the fraction of a second.

    깊은 수면의 상태에서 정상적으로 깨어있는 상태로 내려오는 과정중 일초의 몇분에 일일지라도 그대는 필이 꿈의 상태를 꼭 거쳐야만 한다.

    -> 깊은 수면의 상태에서 일상적으로 깨어있는 상태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그대는 일초보다 짧은 순간일지라도 반드시 꿈의 상태를 거쳐야 한다.

    Now, at one time you have a very happy and sweet dream in which your ideal of happiness is fulfilled. But being a dream it lasts only a little while, and waking pains you so much that you sigh, What a pity it was only a dream!

    자, 어떤 날은 그대가 생각하는 이상적 행복함이 충족되는 매우 기쁘고 달콤한 꿈을 꾸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꿈인만큼 그리 오래가지는 못한다. 오히려 꿈에서 깨면서 그대는 꿈에 불과하다는 안타까움에 심한 고통을 느끼며 한탄하게 된다.

    -> 자, 어떤 날은 그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행복이 실현된 정말로 기쁘고 달콤한 꿈을 꿀 때가 있다. 그러나 꿈인 만큼 아주 잠시 지속될 뿐이다. 오히려 그대가 꿈에서 깨었을 때는, 단지 꿈에 불과했다는 안타까움에 심한 고통을 느끼며 한탄하게 된다.

  2. maya49 says

    At some other time you have a horrible dream in which you experience great suffering. Time seems an eternity. As you wake you feel such relief that you say, Thank God it was only a dream after all.

    또한, 어떤 다른 날은 깊은 고통을 체험하게 되는 악몽을 꾼다. 이때 시간은 영원인것 같이 느껴진다. 꿈에서 깨면서 그대는 엄청난 경감을 느껴며 “다행히도 꿈에 불과 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 또다른 어떤 날은, 극심한 고통을 경험하는 악몽을 꾼다. 이때 시간은 영원한 듯 느껴진다. 꿈에서 깨면 그대는 정말 안도하며, ‘다행히도 꿈에 불과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In the dream state you enjoy and suffer. When you wake you realize that your enjoyment and suffering was nothing but a dream—an illusion. But knowthat your present state of consciousness which you call being awake, when compared to the Real Awake State, is nothing but a dream state. Your life is a dream within the mighty Dream of God which is the Universe.

    꿈의 상태에서 그대는 즐기기도 하고 고통도 격는다. 꿈에서 깨면서 그대는 꿈속의 즐거움도 고통도 다 꿈에 불과한 환상(illusion)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알라 — 그대가 깨어있는 의식상태라고 생각하는 현제 그대의 의식 상태는 전정한 깨임의 상태(Real Awake State)에 비하면 꿈에 상태에 불과하다. 그대의 인생은 꿈속에 꿈일 뿐이다; 온 우주 그 자체인 신의 그 엄청난 대꿈(mighty Dream of God)속에 담긴 소꿈일 뿐이다.

    -> 꿈의 상태에서 그대는 즐겁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꿈에서 깨었을 때, 그대는 꿈속의 즐거움이나 고통이 모두 꿈에 불과한 환상(illusion)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대가 깨어있다고 말하는 현재의 의식 상태도 ‘참된 깨어남의 상태’(Real Awake State)에 비하면 꿈의 상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라. 그대의 삶은, 이 우주 자체인 신이 꾸는 거대한 꿈(mighty Dream of God) 안에 담긴 작은 꿈일 뿐이다.

    From your present awake dream state you have to go through many sleeps of deaths before you get established in the Real Awake State. After ordinary sleepyou awake in the same surroundings; after death you arise in a new environment. But this does not bring the end of your suffering, for the Thread of Action (Karma) continues unbroken and unfailingly keeps on determining your life. The humour of it is new settings create new worries. The grip of illusion is so tight and deceitful that you cannot help worrying. So your life in your awake dream state becomes an endless chain of suffering.

    현제 그대의 깨어있는 꿈의 상태(awake dream state)에서 실제 깨임 상태(Real Awake State)에 확립될 수 있기 전에 그대는 여러 죽음의 잠들(sleeps of death)을 거쳐야만 한다. 일반적인 잠을 잔후 그대는 자기전의 그 똑같은 환경에서 깨어난다; 죽음 이후에는 완전히 다른 어떤 새로운 환경에서 깨어난다. 그러나 이것도 그대의 고통의 종말을 가져오진 못한다. 이것은 행의 맥(Thread of Action) 즉 카르마(Karma) 가 지속적으로 끈임없이 그대의 인생을 정해가기 때문이다. 유머스럽게도, 새로운 환경마다 자체의 새로운 걱정거리들을 창출한다. 철저하게 움켜쥐며 속이는 환상의 손아귀에 꽉 붙잡혀 그대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깨여있는 꿈의 상태(awake dream state) 속에서의 그대의 인생은 끊임없는 고난의 일련이 된다.

    -> 현재 그대가 속한 ‘깨어있는 꿈의 상태’(awake dream state)에서 ‘참된 깨어남의 상태’(Real Awake State)로 확립되기 전에, 그대는 수많은 죽음의 잠들(sleeps of death)을 거쳐야 한다. 일상적인 잠을 잔 뒤에는 자기 전과 같은 환경에서 깨어난다. ; 그러나 죽음 이후에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환경에서 깨어난다. 그러나 이것도 그대의 고통을 끝내진 못한다. 왜냐하면 행위의 맥락(Thread of Action), 즉 카르마(karma)가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그대의 삶을 결정해가기 때문이다. 재밌는 일은, 새로운 환경마다 새로운 걱정거리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거짓된 환상의 손아귀에 꽉 붙들려 속으면서, 그대는 걱정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깨어있는 꿈의 상태(awake dream state)에서의 그대의 삶은, 끊임없는 고통의 연속이 된다.

    You, as gross body, are born again and again till you realize your Real Self. You, as mind, are born only once and die only once; in this sense you do not reincarnate. The gross body keeps changing, but mind (mental body) remains the same throughout. All impressions (sanskaras) are stored in the mind. The impressions are either to be spent or counteracted through fresh karma in successive incarnations. Buddha’s wheel denotes the cycle of births and deaths. The wheel goes on in its ceaseless round. It lifts you to the heights; it brings you down to the depths.

    그대는, 그대의 실제적 자자(Real Self/진정한 자아)를 깨달을 때까지 거듭 되풀이하며 육체적 몸(gross body)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그대의 마인드(mind)는 오로지 한번 만 태어나고 한번 죽는다; 즉, 이런 의미에선 환생(reincarnate)하지 않는다. 육체적 몸(gross body)은 계속 번갈아 바뀌지만 그대의 마인드(mind), 즉 정신적 몸(mental body)은 두루 (일정하게) 바뀌지 않는다. 모든 인상(impressions)자국들, 또는 산스카라들은 마인드에 저장된다. 이 인상들은 잇다라 지속되는 환생의 여러 새로운 카르마들을(인연들을) 통해 소비(소모)되던지 중회된다. 부처님의 업륜(業輪: Wheel of Karma)은 거듭되는 생과 사의 주기들을 나타낸다. 그 바퀴는 끊임없이 계속해서 돌아간다. 그대를 저 높이 날개하다가도 저 깊숰히 묻기도 한다.

    -> 자신의 참나(Real Self)를 깨달을 때까지, 그대는 물질적 몸(육체, gross body)으로 거듭해서 태어난다. 그러나 그대의 마음(mind)은 오직 한 번 태어났다가 한 번 죽는다. 이런 의미에서, 그대는 환생하지 않는다. 육체는 계속해서 바뀌지만, 마음(정신적 몸)은 계속해서 같다. 모든 인상들(산스카라)은 마음 안에 저장된다. 그 인상들은 연속되는 환생 속에서 다 써서 없어지거나, 새로운 까르마를 통해 상쇄된다. 부처님의 수레바퀴(業輪)는 거듭되는 생과 사의 순환을 나타낸다. 이 바퀴는 끊임없이 계속해서 돌아간다. 그것은 그대를 최고 정점으로 들어 올렸다가는,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시킨다.

    * 선생님, 이전 chapters에서는 gross body를 ‘물질적 신체’라고 했는데, 오늘 용어사전을 보니, ‘몸’이라고 하는 것이 더 포괄적이라고 쓰여있네요. ‘물질적 신체 or 물질적 몸’ ‘기적 신체 or 기적 몸’ 어떻게 할지 통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신체 대신에 ‘몸’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물질로 형성된 ‘신체’를 넘어서 존재의 전체를 ‘나의 몸’으로도 바바님께서 표현하시기 때문입니다. ‘신체’라는 단어는 유독 육체의 물질만을 의미하고, ‘몸’이라는 단어에는 ‘정신적 몸'(mental body)이나 기적 몸(subtle body)등 육체적 물질로서 존재하지 않는 ‘몸’을 말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몸. – <용어사전>에서

    To show you how karma persists as a connecting link and a life- determining factor of future lives I give you an example. There is a king who has vast possessions. But he is a worthless king. He spends all his energy and money in selfish pursuits and luxuries and has no care for his subjects. In his next birth he is born blind and becomes a beggar and thus compensates for his wrong doings.

    카르마가 어떤식으로 연결고리 역할을 지속하며, 후생의 업장에 있어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지를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부유한 왕이 있다. 그러나 그는 쓸모없는 왕이다. 그는 온갖 호화로운 사치품들에 자신의 모든 신경과 돈을 쓰며 백성들은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는 다음 생에 장님으로 태어나 결국 거지가 되어 전생의 비행을 보상한다.

    -> 후생(後生)에 대해 카르마가 어떻게 결정 요인이 되고 연결 고리로 지속되는지, 예를 들어주겠다. 한 부유한 왕이 있다. 그러나 그는 쓸모없는 왕이다. 그 왕은 온갖 사치품과 이기적인 소유에 온 신경과 돈을 허비하고, 백성들은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는 다음 생에 맹인(盲人)으로 태어나 결국 거지가 되어, 전생의 그릇된 행동을 갚게 된다.

    * 장님은..좀 낮추어 부르는 말이라..;; ‘보상하다’도 좋지만, 까르마를 ’갚는다‘가 더 와닿는 거 같아서요.

    Now this king has a servant who is honest and faithful and hard- working. In his next birth because of his merits he is born into a cultured and well-to-do family. One day, when he is going along the street he hears a pitiable cry from the pavement. It is from the blind beggar who was the king in his previous life crying aloud with outstretched hands, Have pity. Give me a penny in the name of the Lord.

    이 왕에게는 정직하고 성실한 종이 있다. 그 종은 후생에 부유하고 교양있는 집안에서 태어난다. 어느날 그는 거리를 거닐다 신음소리를 듣는다. 손을 내밀며 비는 전생에 왕 이었던 장님 거지다. 그는 “불상히 여겨주소서. 신의 이름으로 일푼만 주시오.” 라고 한다.

    -> 이 왕에게는 정직하고 진실하며 성실한 종이 있다. 이러한 덕목으로 인해, 그 종은 후생에 부유하고 교양있는 집안에서 태어난다. 어느날 그는 거리를 거닐다가 길바닥에서 처량한 신음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전생에 왕이었던 맹인 거지가, 두 손을 뻗치며 외치는 소리였다. “제발 불쌍히 여기소서. 신의 이름으로 한 푼만 주세요.”

    And because all actions however trivial, are inwardly determined by the Sanskaric ties, creating claims and counterclaims, the rich man is unconsciously drawn towards the beggar and gives him a few copper coins. A king crying out for alms and a servant taking pity on him—what a comedy, what an irony of fate! This is the working of the law of karma, the expression of justice in the world of values. The law of karma is impartial and inexorable.

    아무리 사소한 행위건 상관없이 일체의 모든 행위는 서로 산스카라적 클레임(claimㄴ:청구)과 반소들(counterclaim)을 창출해가며, 내부적으로 이러한 산스카라적 맥(연결 고리)들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 거지가 있는 곳으로 끌리듯이 가게 될수밖에 없으며, 결국 몇푼의 동전을 주게 된다. 왕은 한푼달라고 빌고 있고 종이 왕을 불쌍히 여기고 있다. 이, 얼마나 우끼고 아이로니컬한(역설적인) 일이냐! 바로 이것이 카르마법{칙)의 작용이다. 가치의 세계(world of values) 속에서의 공정성(justice)의 표현이다. 카르마의 법은 절대 공정하며 거침없시 절대-지속적이다.

    ->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모든 행위는 내밀하게 산스카라적 매듭들(Sanskaric ties)에 의해 결정되고, 서로간에 요청(claim)과 방어(counterclaim)를 불러일으킨다. ; 그래서 부유한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그 거지에게 이끌려 동전 몇 푼을 주게 된다. 한 푼만 달라고 빌고 있는 왕과 그를 불쌍히 여기는 종이라니, 이 얼마나 우스운 운명의 장난인가! 이것이 바로 카르마 법칙의 작용이며, 가치의 세계(world of values)에서의 정의(justice)의 표현이다. 카르마의 법칙은 공명정대하며, 가차없이 준엄하다.

    *inexorable-1. 냉혹[무정]한, 용서 없는(relentless) 2. 굽힐 수 없는, 움직일 수 없는, 엄연한 -> 준엄하다는 의미가 맞을 듯 합니다. 아래 이어지는 문장을 봐도 그렇지요.

    It knows no concessions, gives no preferences, makes no exceptions. It dispenses justice.

    이 법은 일치의 양도도 모르며, 그 누구도 선호하지 않으며, 일치의 예외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 법은 공정을 제공(분배)할 뿐이다.

    -> 이 법에는 어떤 양보도 없고, 차별도 없으며, 어떤 예외도 두지 않는다. 카르마의 법칙은 정의를 베풀 뿐이다.

    * 누구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은, 까르마의 법칙이 모든 사람에게 예외없이 차별없이 균등하게 작용한다는 뜻이므로, ‘차별도 없으며’로 번역해도 될 것 같은데요.
    dispense- 나눠주다, 분배하다. 베풀다. (정의라는 가치를, 사람들에게 베푼다는 의미가 더 적절할 듯 한데요. 정의를 분배하다도 뜻은 이해되지만, 문장이 조금 어색해서요. )

    By the divine law you are shielded from remembrance of past lives, for it would not help you in living your present life but would make it infinitely more complicated and confusing.

    선성적 법에 의해 그대는 전생을 기역하지 못하도록 보호되어있다; 그 이유는 현생을 사는대에 있어, 전생을 기역하는 것이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아니라 오히려 현생을 무한도로 복잡하고 혼동 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 신성한 법칙에 의해, 그대는 전생들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보호받는다. ; 그 이유는 현재의 삶을 사는데 전생의 기억이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한없이 복잡하고 혼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For me ‘past’ does not exist. I live in the Eternal Present. I clearly see your formerlives, with all your intimate and intricate relationships with so many individuals. Your various reactions to others seen in the context of your mutual connections in previous lives serves as a mighty joke to me and helps to ease my burden of suffering.

    내게 ‘과거’ 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영원한 지금/현재(Eternal Present)에서 산다. 나는 그대의 여러 전생들을 명백하게 본다; 그 수 많은 사람들과 그대가 갖았던 여러 밀접하고 복잡한 관계들을 다 본다. 남들에 대한 그대의 {각종} 다양한 반응들을, 그대의 여러 전생에서 비롯되는 인연적 상호관계들의 맥락으로 볼때, 이 일은 내개 거대한 농담/우슴거리(mighty joke)를 제공하여, 나의 고통을 더는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

    -> 내게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영원한 현재(Eternal Present)에 산다. 나는 그대들의 여러 전생들을 선명하게 본다. ; 그대가 수많은 사람들과 맺었던 밀접하고 복잡한 모든 관계들을 본다. 여러 전생에서 이어져온 상호 관계들의 맥락에서 볼 때 남들을 대하는 그대의 다양한 반응들은 내게 거대한 농담(mighty joke)으로 작용하여, 나의 고통을 더는데 도움을 준다.

    Now, I give you anotherexample. It is not an uncommon happening. A Moslem after death is buried in a graveyard. After a few incarnations he is born again in a Moslem family in the same town. It is customary among Moslems to offer prayers for the dead when they visit graves, to pray to God Almighty to save the departed ones. And so it happens that this person stands before his own grave and solemnly prays, ‘May god save his soul!’ What an absurdity! How pathetic!

    자 그럼, 또다른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이슬람교도 사람이 사후에 공동묘지에 묻히는 일은 흔한일이다. 그후 그 사람은 몇 생애를 거친후 같은 마을에 어떤 이슬람교도 집안에 태어난다. 이슬람 교도들 사이에는 조상의 묘를 방문하여 그 조상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풍습이있다. ‘위대하신 신이시여 돌아가신 우리 조상님을 잘 살펴주소서’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근대 우연히나마 ‘신이시여 이분의 영혼을 부탁합니다’ 라고 하며 전생의 자기 자신의 무덤앞에서 신중히 기도하게 되는 꼴일 생길 때가 있다. 그 얼무나 우스꽝스러운 일이냐! 얼마나 한심한 일이냐!

    -> 이제 또다른 예를 하나 들어주겠다. 이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한 이슬람교도가 죽은 후에 공동묘지에 묻혔다. 몇 번의 환생을 거친 후, 그는 똑같은 마을의 이슬람 집안에 다시 태어났다. 이슬람교도에게는 조상의 묘에 방문하여 죽은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풍습이 있다. ‘전능한 신이시여, 돌아가신 우리 조상님을 잘 보살펴주소서’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 남자처럼 어쩌다 자신의 묘 앞에 서서 ‘신이시여 이분의 영혼을 부탁합니다.’ 하고 엄숙하게 기도하는 일이 생기곤 한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The wheel of births and deaths ceaselessly turns. You are born as a male, as a female; rich, poor; brilliant, dull; healthy, weak; black, white; of different nationalities and of different creeds, in accordance with your inherent and imperative need to have that richness of experience which helps transcend all forms of duality. Side by side with the experience, the paying and receiving of payment of karmic debts go on ad infinitum. How can you clear the account? The Avatar, or the Sadguru, having universal Mind, literally embodies universal life. It is through Him that you become free from this business of karma.

    윤회의 바퀴는 끊임없이 돌고 돈다. 그대 속에 내제 되어 있는 필요에 따라 그대는 남자로, 여자로; 부자로, 가난한 사람으로; 건강한 사람으로, 허약한 사람으로; 흑인으로, 백인으로; 그리고 각종 여러 다양한 나라 사람으로, 그리고 각종 다른 여러 교리인으로 태어난다. 이 여러 다양하고 풍부한 체험들은, 그대가 이원성의 모든 형태들을 초월하는데에 있어 그대속에 내재되어 있는 대로 긴요한 체험들로 구성된다. 각종체험과 더불어 나란히 카르마적 빛의 주고 받음(지불 과 수입) 도 영원히 지속된다. 그대가 어찌 그 장부(의 잔액을)를 정리할 수 있으랴? 아바타나 완벽한 스승(Sadguru)은 우주적 마인드(universal Mind)를 지녔기에, 이 분들은 실질적으로 우주의 생(universal life) 그 자체를 내포한다. 바로 그이(Him)을 통해서 그대가(누구든) 카르마의 복잡함을 벗어나는 것이다.

    -> 탄생과 죽음의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돌아간다. 그대에게 내재된 긴요한 필요에 따라 그대는 남자나 여자, 부자나 빈민, 영재나 둔재, 건강하거나 허약한 사람, 흑인이나 백인 등 다양한 국적과 다양한 신념을 지닌 사람으로 태어난다. 이러한 다양하고 풍부한 체험들은 모든 형태의 이원성을 초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체험과 더불어 카르마적 빚의 주고 받음도 무한정 계속된다. 그대가 어찌 이 장부를 정리할 수 있을까? 아바타나 삳구루(Sadguru)는 우주적 마음(universal Mind)을 지녔기에, 말 그대로 우주적 삶(universal life)을 구현한다. 따라서 이 카르마의 소관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오직 그분(Him)을 통해서다.

    *Universal: 만유(萬有)적; 유니버설; 바바님의 만유(萬有) 내에는 무수의 우주들이 끝없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우주적’이라는 표현을 피합니다 –<용어사전>

    <용어사전>에는 이렇게 쓰여있는데요.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만유(萬有) –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우주 안의 무수한 우주들이란 뜻이 아니라, 우주 안에 존재하는 everything이라는 의미입니다.
    제가 볼 때, universal mind, universal body..는, 하나의 한정된 육체에 갇힌 마음이나 몸이 아니라, 우주 전체에 걸쳐있는 마음, 우주적인 몸이란 뜻 같은데요. 즉 우주 전체에 통하는.. 따라서 ‘우주적 몸,우주적 마음, 우주적 삶 이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embody-> 1.(사상·감정 등을 예술품·말 등으로) 구체화하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다, 구현하다 ((in)) 2.<정신에> 형태를 부여하다
    * business – 일, 업무, 소관, 분야

    The life of everything and everyone is an open book to me. It is like a film show that I enjoy at my own cost. I am the sole Producer of this ever-changing and never-ending film called the universe, wherein I become you in your awake dream state in order to awaken you to the Real AwakeState. When you experience this state you will realize the nothingness of what was your awake dream state which you experience now. This needs my Grace. When my Grace descends it makes you Me.

    일체 만물의 생애와 일체 만인의 생애는 내게 열린 책과 다름없다. 영화를 즐기는 것과 같다; 내가 즐기면서도 손해만 보는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바로 내가 끝 없으며, 계속해서 변해가는, 이 우주라고 불리는 영화의 단독 프로듀서(제작자)다. 실재로 깨어있는 상태(Real Awake State) 속으로 그대를 일깨우기 위해, 그대의 깨어있는 꿈의 상태(awake dream state)속에서 내(I)가 그대(you)가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이 우주라 불리는 영화, 끝없으며 계속해서 변해가는 이 영화의 단독 제작자가 바로 나다.

    -> 모든 것과 모든 이의 삶은 내게 열린 책과 같다. 그것은 내 손으로 지불하고(or 내가 손해보면서?), 보고 즐기는 영화와 같다. 나야말로 계속해서 변화하고 결코 끝나지 않을, 이‘우주’라 불리는 영화의 단독 제작자다. 그대를 ‘참된 깨어남의 상태(Real Awake State)’로 일깨우기 위해, 그대의 ‘깨어있는 꿈의 상태(awake dream state)’에서 나는 그대가 되었다. 그대가 ‘참된 깨어남의 상태’를 경험하면, 그대가 지금 경험 중인 ‘깨어있는 꿈의 상태’가 ‘아무 것도 아니었음’(nothingness, 無)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나의 은총이 필요하다. 나의 은총이 내려오면, 그대는 내가 된다.

  3. mnm.mark@gmail.com says

    1. 30. Awake Dream State to Real Awake State
    깨인 꿈의 상태에서 참으로 깨인 상태로
    -> ‘깨어있는 꿈의 상태’에서 ‘참된 깨어남의 상태’로

    백점 만점!!!!!!!

  4. mnm.mark@gmail.com says

    2. The First Song of the Infinite is the beginning of Creation. It brings about the apparent descent of the Infinite into the domain of multiple duality. Duality implies unending sufferings.

    무한함(Infinite)의 첫노래가 바로 천지창조의 시점(발단)이다. 이 노래가 각종 이원성의 영역(domain of multiple reality)으로 그 무한함의 외견상(표면상: apparent) 하강(descent)을 촉발한다. 이원성(duality)에는 {필이} 끝 없는 고난이 수반(내포)된다.

    -> 무한함(Infinite)의 첫 노래가 천지창조의 시작이다. 이 첫 노래가 무한함을 다양한 이원성의 영역(domain of multiple duality)으로 끌어내리는 듯 /or 하강(descent)시키는 듯 보인다(apprent). 이원성(duality)은 {반드시} 끝없는 고통을 수반한다.

    –> -> 무한함(Infinite)의 첫 노래가 {바로} 천지창조의 시작{시점}이다. 이 첫 노래가 무한함을 다양한{여러겹} 이원성의 영역(domain of multiple duality)으로 끌어내리는 듯 /or 하강(descent)시키는 듯 보인다(apprent). 이원성(duality)은 {반드시} 끝없는 고통을 수반한다.

    It brings about the apparent descent of the Infinite into the domain of multiple duality.
    이 첫 노래는 각종-겹겹 이원성의 영역으로 그 무한함의 표면상(apparent) 하강을 초래한다.
    이 첫 노래는 각종-겹겹 이원성의 영역으로 그 무한함의 표면상(apparent) 하강을 가져온다.

    Duality implies unending sufferings.
    이원성에는 반드시 긑없는 고통이 수반된다.

    3. I am eternally happy for I know that I am the Infinite One. I alone exist; there is nothing besides me; all else is Illusion. Simultaneously, I suffer eternally.

    나는 영원토록 행복하다; 왜냐? 내가 그 무한한 그이(The Infinite One)라는 사실을 알기(know) 때문이다. 오로지 나 만이 존재한다; 나 외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일체의 나머지는 다 환상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는 영원한 고난을 격는다.

    -> 나는 영원토록 행복하다. ; 내가 무한한 그이(The Infinite One)라는 사실을 알기(know) 때문이다. 오로지 나만이 존재한다; 나 외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외의 다른 것은 환상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는 영원히 고통받는다.

    –> -> 나는 영원토록 행복하다[.] ; {이것은} 내가 무한한 그이(The Infinite One)라는 사실을 알기(know) 때문이다. 오로지 나만이 존재한다; 나 외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외의 다른 [모든 것들은 전부] 환상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는 영원히 고통받는다.

  5. mnm.mark@gmail.com says

    4. I, as myself, am free. But in you, as you, I get myself bound. I knowingly suffer through you, to make you free from bindings. This is my crucifixion. Your experience of suffering is because of sheer ignorance; and your ignorance is my suffering.

    본인 자체로써의 나는 자유롭다. 그런대 그대 속에, 그대 로써 의 나는 자신을 속박한다. 그대의 속박으로부터 그대를 풀어주기 위해서 나는 알면서도 일부러 그대를 통해 고난을 격는다. 바로 이것이 나의 십자가의 형벌(책형: crucifixion)이다. 그대가 고난(고통)을 체험하게 되는 이유는 유독 그대의 까마득한 무지(sheer ignorance) 때문이며, 그대의 무지가 바로 나의 고난(고통)이다.

    -> 나는 나자신으로서 자유롭다. 그러나 그대 안에, 그대로서의 나는 자신을 속박한다. 그대를 속박에서 풀어주기 위해, 나는 알면서도 그대를 통해 고통받는다. 이것이 나의 십자가의 형벌(crucifixion)이다. 그대가 고통을 겪는 이유는 까마득한 무지(sheer ignorance) 때문이며, 그대의 무지가 바로 나의 고통이다.

    –>-> 나는 나자신으로서 자유롭다. 그러나 그대 안에, 그대로서의 나는 [내/그]자신을 속박한다. 그대를 속박에서 풀어주기 위해, 나는 알면서도 그대를 통해 고통받는다. 이것이 나의 십자가의 형벌(crucifixion)이다. 그대가 고통을 겪는 이유는 [그대의] 까마득한 무지(sheer ignorance) 때문이며, 그대의 무지가 바로 나의 고통이다.

  6. mnm.mark@gmail.com says

    5. You, as gross body, are born again and again till you realize your Real Self. You, as mind, are born only once and die only once; in this sense you do not reincarnate. The gross body keeps changing, but mind (mental body) remains the same throughout. All impressions (sanskaras) are stored in the mind. The impressions are either to be spent or counteracted through fresh karma in successive incarnations. Buddha’s wheel denotes the cycle of births and deaths. The wheel goes on in its ceaseless round. It lifts you to the heights; it brings you down to the depths.

    그대는, 그대의 실제적 자자(Real Self/진정한 자아)를 깨달을 때까지 거듭 되풀이하며 육체적 몸(gross body)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그대의 마인드(mind)는 오로지 한번 만 태어나고 한번 죽는다; 즉, 이런 의미에선 환생(reincarnate)하지 않는다. 육체적 몸(gross body)은 계속 번갈아 바뀌지만 그대의 마인드(mind), 즉 정신적 몸(mental body)은 두루 (일정하게) 바뀌지 않는다. 모든 인상(impressions)자국들, 또는 산스카라들은 마인드에 저장된다. 이 인상들은 잇다라 지속되는 환생의 여러 새로운 카르마들을(인연들을) 통해 소비(소모)되던지 중회된다. 부처님의 업륜(業輪: Wheel of Karma)은 거듭되는 생과 사의 주기들을 나타낸다. 그 바퀴는 끊임없이 계속해서 돌아간다. 그대를 저 높이 날개하다가도 저 깊숰히 묻기도 한다.

    -> 자신의 참나(Real Self)를 깨달을 때까지, 그대는 물질적 몸(육체, gross body)으로 거듭해서 태어난다. 그러나 그대의 마음(mind)은 오직 한 번 태어났다가 한 번 죽는다. 이런 의미에서, 그대는 환생하지 않는다. 육체는 계속해서 바뀌지만, 마음(정신적 몸)은 계속해서 같다. 모든 인상들(산스카라)은 마음 안에 저장된다. 그 인상들은 연속되는 환생 속에서 다 써서 없어지거나, 새로운 까르마를 통해 상쇄된다. 부처님의 수레바퀴(業輪)는 거듭되는 생과 사의 순환을 나타낸다. 이 바퀴는 끊임없이 계속해서 돌아간다. 그것은 그대를 최고 정점으로 들어 올렸다가는,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시킨다.

    –>-> 자신의 참나(Real Self)를 깨달을 때까지, 그대는 물질적 몸(육체, gross body)으로 거듭해서 태어난다. 그러나 그대의 마음(mind)은 오직 한 번 태어났다가 한 번 죽는다. 이런 의미에서, 그대는 환생하지 않는다. 육체는 계속해서 바뀌지만, 마음(정신적 몸)은 계속해서 같다. 모든 인상들(산스카라)은 마음 안에 저장된다. 그 인상들은 연속되는 환생 속에서 다 써서 없어지거나, 새로운 까르마를 통해 상쇄된다. 부처님의 수레바퀴(業輪)는 거듭되는 생과 사의 순환을 나타낸다. 이 바퀴는 끊임없이 계속해서 돌아간다. 그것은 그대를 최고 정점으로 들어 올렸다가는,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시킨다.

    All impressions (sanskaras) are stored in the mind. The impressions are either to be spent or counteracted through fresh karma in successive incarnations.
    모든 인상들(산스카라들)은 마인드(마음) 안에 저장된다.
    ->그 인상들은 연속되는 환생 속에서 다 써서 없어지거나, 새로운 까르마를 통해 상쇄된다.
    –>그 인상들은 잇다라 연속되는 환생 속에서 다 소비(소모)되거나, 또는{아니면} 새로운 까르마를 통해 상쇄(중화)된다.
    Buddha’s wheel denotes the cycle of births and deaths. The wheel goes on in its ceaseless round.
    부처님의 {업륜의} 수레바퀴(業輪)는 거듭되는 생과 사의 순환을 나타낸다. 이 {윤회의} 바퀴는 끊임없이 계속해서 돌아간다.

  7. mnm.mark@gmail.com says

    6. * 선생님, 이전 chapters에서는 gross body를 ‘물질적 신체’라고 했는데, 오늘 용어사전을 보니, ‘몸’이라고 하는 것이 더 포괄적이라고 쓰여있네요. ‘물질적 신체 or 물질적 몸’ ‘기적 신체 or 기적 몸’ 어떻게 할지 통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상의합시다.

  8. mnm.mark@gmail.com says

    7. And because all actions however trivial, are inwardly determined by the Sanskaric ties, creating claims and counterclaims, the rich man is unconsciously drawn towards the beggar and gives him a few copper coins. A king crying out for alms and a servant taking pity on him—what a comedy, what an irony of fate! This is the working of the law of karma, the expression of justice in the world of values. The law of karma is impartial and inexorable.

    아무리 사소한 행위건 상관없이 일체의 모든 행위는 서로 산스카라적 클레임(claimㄴ:청구)과 반소들(counterclaim)을 창출해가며, 내부적으로 이러한 산스카라적 맥(연결 고리)들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 거지가 있는 곳으로 끌리듯이 가게 될수밖에 없으며, 결국 몇푼의 동전을 주게 된다. 왕은 한푼달라고 빌고 있고 종이 왕을 불쌍히 여기고 있다. 이, 얼마나 우끼고 아이로니컬한(역설적인) 일이냐! 바로 이것이 카르마법{칙)의 작용이다. 가치의 세계(world of values) 속에서의 공정성(justice)의 표현이다. 카르마의 법은 절대 공정하며 거침없시 절대-지속적이다.

    ->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모든 행위는 내밀하게 산스카라적 매듭들(Sanskaric ties)에 의해 결정되고, 서로간에 요청(claim)과 방어(counterclaim)를 불러일으킨다. ; 그래서 부유한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그 거지에게 이끌려 동전 몇 푼을 주게 된다. 한 푼만 달라고 빌고 있는 왕과 그를 불쌍히 여기는 종이라니, 이 얼마나 우스운 운명의 장난인가! 이것이 바로 카르마 법칙의 작용이며, 가치의 세계(world of values)에서의 정의(justice)의 표현이다. 카르마의 법칙은 공명정대하며, 가차없이 준엄하다.

    *inexorable-1. 냉혹[무정]한, 용서 없는(relentless) 2. 굽힐 수 없는, 움직일 수 없는, 엄연한 -> 준엄하다는 의미가 맞을 듯 합니다. 아래 이어지는 문장을 봐도 그렇지요.

    *** claim 과 counterclaim 도 상의합시다.

    relentless는 홍수물이 relentless 하게 흐르기 때문에 그 무엇도 그 물이 가는 길을 몾 막는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속’이라는 단어를 넣었습니다. 즉 relentless는 He is relentless. 즉 그 사람의 야망은 너무나도 커서 그 무 엇도 장애물이 몾된다. 즉, 다 뚫고 가던길 그대로 일체의 속도 줄임도 없이 그대로 나아 간다. — 이런 뜻도 있습니다.

  9. mnm.mark@gmail.com says

    8. It knows no concessions, gives no preferences, makes no exceptions. It dispenses justice.

    이 법은 일치의 양도도 모르며, 그 누구도 선호하지 않으며, 일치의 예외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 법은 공정을 제공(분배)할 뿐이다.

    -> 이 법에는 어떤 양보도 없고, 차별도 없으며, 어떤 예외도 두지 않는다. 카르마의 법칙은 정의를 베풀 뿐이다.

    * 누구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은, 까르마의 법칙이 모든 사람에게 예외없이 차별없이 균등하게 작용한다는 뜻이므로, ‘차별도 없으며’로 번역해도 될 것 같은데요.
    dispense- 나눠주다, 분배하다. 베풀다. (정의라는 가치를, 사람들에게 베푼다는 의미가 더 적절할 듯 한데요. 정의를 분배하다도 뜻은 이해되지만, 문장이 조금 어색해서요. )

    *** 이것은 선호한다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유. 나는 바바를 믿는 사람이니까,또는 만난 사람이니까, 안 믿는 저 사람들보다는 조금이라도 들 카르마의 벌을 받겟지… 바로 이런 사람을 위해서 특별히 는 문구….

  10. mnm.mark@gmail.com says

    9. -> 신성한 법칙에 의해, 그대는 전생들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보호받는다[.] ; 그 이유는 현재의 삶을 사는데 전생의 기억이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한없이 복잡하고 혼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11. mnm.mark@gmail.com says

    10. 윤회의 바퀴는 끊임없이 돌고 돈다.
    -> 탄생과 죽음의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돌아간다.

    빚의 주고 받음도 무한정 계속된다. 무한토록 영원히 ad infinitum.

    The Avatar, or the Sadguru, having universal Mind, literally embodies universal life.

    ->아바타나 삳구루(Sadguru)는 우주적 마음(universal Mind)을 지녔기에, 말 그대로 우주적 삶(universal life)을 구현한다.

    –> 아바타나 삳구루(Sadguru)는 우주적 마음(universal Mind)을 지녔기에, 말 그대로 우주적 삶(universal life) {그 자체를} 구현한다. 만유적, 우주적, 유니버설 상의합시다.

    It is through Him that you become free from this business of karma.
    ->따라서 이 카르마의 소관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오직 그분(Him)을 통해서다.
    –>따라서 이 카르마의 소관에서 그대가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은 오직 그분(Him)을 통해서 뿐이다.

  12. mnm.mark@gmail.com says

    10.1 embody –> in-body 그분 몸안에 담고 있다. 그분의 삶이 담고 있다. 내포하다. 부처님께서 온 우주를 자신의 몸이라고 하시는 것과 같을 수도 있고. embody — Mother Theresa is the embodiment of love and compassion. 수녀 테레자는 사랑과 자비심 그 자체를 embody 하신다.
    The Avatar, or the Sadguru, having universal Mind, literally embodies universal life.

    11. It is like a film show that I enjoy at my own cost.

    -> 그것은 내 손으로 지불하고(or 내가 손해보면서?), 보고 즐기는 영화와 같다.
    –>그것은 내가 보고 즐기는 영화면서도 동시에 나만 손해보는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When my Grace descends it makes you Me.
    ->나의 은총이 내려오면, 그대는 내가 된다.
    –>나의 은총이 내려오면, 이 때 그 은총은 그대를 나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