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5 산스카라의 형성과 기능

산스카라의 형성과 기능

인간적 체험의 분석

인간적 체험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 주관적(subjective) 측면과 객관적(objective) 측면이다. 주관적 측면에는 인간체험의 주요 성분을 구성하는 ‘정신적 작용'(mental processes)이 있으며, 객관적 측면에는 그 정신적 작용이 소재로 삼는 대상과 사물들이 있다. 정신적 작용은 부분적으로는 당장 앞에 주어진 객관적 상황에 달려 있고, 또 부분적으로는 과거의 체험들로부터 축적해 온 인상들(산스카라들)에 달려있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mind)은 과거 산스카라들의 거대한 바다와 광대한 객관적 우주 사이에 껴있다.

산스카라는 체험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과거의 체험들을 통해 마음에 저장된 인상들(impressions)의 작용에 기반을 둔다. 모든 생각, 감정, 행위의 뒤에는 인상들의 무리가 있다; 이 인상의 무리들을 객관적으로 보면 마음을 변형시키는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이 인상들은 과거의 체험들로부터 축적돼 온 것들이며, 현재와 미래 체험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마음은 체험을 하는 중에, 계속해서 이러한 인상들을 창조하고 거둬들이고 있다.
이 세상의 물질적 대상들(즉 신체, 자연, 각종 사물들 등)에 열중할 때, 마음은 소위 표면화되어 물질적 인상들(gross impressions)을 창출한다. 마음이 (이미 존재하는 산스카라들의 표현인) 스스로의 주관적인 생각(정신작용)에 열중할 때, 마음은 기적 인상과 정신적 인상들을 창출한다. 산스카라가 먼저냐 체험이 먼저냐 하는 질문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질문과 같다. 양쪽 모두 서로의 조건이 되며, 나란히 공존하며 발전한다. 따라서 인간적 체험의 의미를 이해하는 문제는, 산스카라의 형성과 기능을 이해하는 문제의 주위를 맴돈다.

자연적 산스카라와 비자연적 산스카라

산스카라에는 두 종류가 있다; 존재하게 되는 방식에 따라, 자연적(natural) 산스카라와 비자연적(nonnatural) 산스카라로 나뉜다. 유기적 진화 과정(organic evolution) 중에 영혼이 거둬들이는 산스카라들은 자연적이다. 이 자연적 산스카라들은 영혼이 인간 이하의 다양한 형태들을 연달아 취하고 버리면서 발생한다; 즉 생명력이 없는 듯한 돌이나 금속의 형태로부터 의식이 완전히 발달된 인간의 단계에 점차적으로 이르기까지 거둬들인 산스카라들이다. 영혼이 인간 형태에 도달하기 전까지 영혼의 주위를 둘러싸는 모든 산스카라들은 자연적 진화 과정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자연적 산스카라’라고 한다. 이 자연적 산스카라들은, 인간 형태에 도달한 이후에 영혼이 일구는(cultivate) 산스카라들과 주의깊게 구분해야 한다.
인간 단계에서 영혼에 덧붙은 산스카라들은 옳고 그름, 미덕과 악덕을 선택할 수 있는 의식의 도덕적 자유 안에서 일구어지기 때문에 책임이 따른다. 이러한 산스카라들을 비자연적 산스카라라고 한다. 이러한 인간 이후의 산스카라들도 직접적으로 자연적 산스카라들에 의존한다; 그러나 그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삶의 조건 아래서 창조되었으며, 자연적 산스카라들에 비해 비교적 더 근래에 생겨났다. 자연적 산스카라와 비자연적 산스카라는, 형성된 조건과 형성된 기간에 따라 영혼에 부착되는 접착력이 달라진다. 비자연적 산스카라의 근절은, 고대의 유산을 지녀서 더 굳게 뿌리내린 자연적 산스카라의 근절만큼 어렵진 않다. 삿구루(Sadguru), 즉 완벽한 스승의 은총과 개입을 받지 않고서는, 초심자에게 자연적 산스카라들의 소멸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생(生)의 현상은 절대존재(Absolute)의 의식하고픈 의지에서 솟아난다

비자연적 산스카라들은 자연적 산스카라들에 의존하며, 자연적 산스카라들은 진화 과정의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이 다음의 중요한 질문은, 무한한 이 ‘절대적 실재'(absolute Reality)에서 왜, 다양한 진화적 단계를 거치는 생(生)의 현상(manifested life)이 솟아나야만 했는가?’이다.생의 현상의 필요성은, 절대존재의 스스로를 의식하고픈 충동으로부터 솟아오른다.진화 과정을 통해 꾸준히 진행되는 생의 현상은 궁극적으로 무한(the Infinite)에 내재되어 있는, 스스로를 의식하고픈 의지에서 비롯된다. 생각의 차원에서 천지창조를 이해하려면, 현상이 벌어지기 전에 절대존재 안에 그 ‘의식하고픈 의지’가 잠재된 상태로 있었던 것으로 상정해야 한다.

절대존재 안의 라하르(lahar)를 바다의 파도에 비유한다면

천지창조에 대한 지적인 설명을 위해 절대존재(the Absolute) 안에 있는 이 충동을 ‘스스로를 의식하고픈 의지’로 표현하긴 했지만, 이 충동을 일종의 고유한 욕망으로 서술하는 것은 그것의 진정한 본질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도 갑작스럽고 즉흥적으로 솟아오르는 불가해한 충동(impulse)으로서 라하르(lahar)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며, 이것을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는 것은 그 실상을 망치는 것이다. 모든 지적인 분야들은 필연적으로 천지창조의 신비를 파악하는 데 부족하기 때문에, 이 충동(라하르)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가장 근접한 방법은 지적 개념보다는 유사한 예로 비유를 드는 것이다.
잔잔한 바다의 표면을 가로지르는 파도의 물결이 무수한 거품들을 휘저어(stir) 올리듯이, 라하르는 대령(大靈, Oversoul)의 불가분한 무한함으로부터 무수히 많은 개체적 영혼들을 창조한다. 하지만 ‘일체를 포괄하는'(all-abounding) 절대존재는, 모든 개체적 영혼들을 밑받침해주는 일종의 지층(substratum)으로 변함없이 남아있다. 개체적 영혼들은 갑작스럽고 즉흥적인 충동의 창조물이다; 그래서 그들은, 최초의 흔들림(stir)이 순환적 주기를 거쳐 마지막에 가라앉을 때까지 자신의 운명이 계속될 거라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다. 절대존재의 한결같은 어딘가에서 신비한 한 점(the Om Point)이 탄생한다; 그리고 이 한 점에서 천지창조의 만물(manyness)이 솟아나온다. 몇 분의 1초 전만 해도 얼어붙은 듯 고요했던 ‘그 거대한 깊음'(the vastly deep)의 표면이 휘저어져(astir) 살아 움직이는 무수한 거품의 자아들이 형성된다; 그리고 이 자아들은 자기-제한(self-limitation)을 통해 분명한 크기와 형태를 지님으로써 자신의 분리성을 확보한다.  

절대존재는 발현되는 바하스(bhas)에 영향받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단지 비유에 불과하다. 절대존재에 잠재되어 있던 의식하고픈 의지의 라하르(lahar)가 작용하여 현상 세계에 존재를 불러일으킬 때, 절대존재 내에 어떤 실제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실수다. 절대존재 안에서는 그 어떤 진화 과정이나 역진화 과정도 있을 수 없다; 실제적인 그 무엇도 절대존재에서 나올 수 없다; 실제적인 그 어떤 변화일지라도 필연적으로 절대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현상세계의 창조에 암시되는 변화는 ‘절대적 실재'(absolute Reality)의 존재 그 자체에 생기는 변화가 아니다; 즉 존재론적(ontological) 변화가 아니다. 이것은 외관상(apparent)의 변화일 뿐이다. {즉, 어떤 변화가 있는 듯한(apparent) 것일 뿐이다.}
현상의 발현은, 어떤 면에서 무제한적인 절대존재에 일종의 확장이 생긴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현상의 발현을 통해 전혀 의식이 없었던 무한(the Inifinite)은 스스로의 의식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실재의 확장이 자기-제한을 통해 다양한 생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현상의 발현을 무기한적 축소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상의 발현을 실재의 확장으로 보든 끝없는 축소 과정으로 보든, 여기에는 최초의 충동(initial urge) 또는 움직임이 선행된다; (생각의 관점에서) 이 충동은 잠재적으로 원래부터 내재되어 있는 ‘의식하고픈 욕망’으로 볼 수 있다.
천지창조의 다양성과 개체적 영혼들의 분리성은, 오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창조세계의 존재성 또는 현상 세계의 존재성은 바로 바하스(bhas), 즉 환상에 기반한다; 따라서 무수히 많은 개체적 영혼들이 발현됨에도 불구하고, 대령(大靈, Oversoul)은 조금도 확장되거나 축소되거나 증가되거나 감소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변함없이 남아있는다. 대령은 바하스, 즉 환상의 개체화에 의해 그 어떤 변화도 겪지 않는다; 다만 대령이 수많은 개체적 영혼으로 분화되는 듯 보이는 현상이 있을 뿐이다. 

가장 원초적인 바하스(bhas)

대령을 유혹한 가장 원초적인 바하스(환상)의 발생은 첫 인상(impression)의 발생과 일치한다. 따라서 가장 원초적인 바하스의 생겨남은, 산스카라 형성 과정의 시작과 일치한다. 산스카라들의 형성은 영혼의 개체성이 발현되는 첫번째 초점인, 가장 한정된 중심에서부터 시작된다. 물질적 영역에서 이 첫번째 초점의 발현은 가장 원시적이고 부분적인 의식을 지닌, 삼차원적이고 불활성적인 돌의 형태로 (대표적으로) 표현된다. 이 희미하고 미발달된 의식의 상태는 자신의 모양과 형태마저 명확히 인식할 수가 없다; 그래서 대령이 스스로를 알고자 시작했던 천지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속수무책으로 불충분하다.
돌 단계에서 의식이 지니는 지극히 미비한 양의 의식마저도 돌의 물질적 신체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대령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의식은 돌의 물질적 신체와 별개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대령은 먼저 스스로를 의식과 동일시한 후, 그 의식을 통해 돌의 물질적 신체와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그 이상의 의식의 발달은 돌의 물질적 신체와 무기력(침체 상태)에 사로잡혀 저지된다; 그래서 보다 높은 형태의 진화가 필요해진다; 즉, 보다 높은 매개체의 발현이 필수불가결해진다. 의식의 발달은 그 의식을 조건화*(역자 주)하는 물질적 신체의 진화와 나란히 병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대령의 광대함 안에 잠재되어 있는 ‘의식하고픈 의지’는 신성적 일념(一念)/결단에 의해, 표현적 매개체의 점진적인 진화를 추구하게 된다.

의식과 형태의 점진적 진화

그래서 대령은 스스로의 새로운 표현적 매개체로서, 의식이 좀더 발전된 금속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그런데 금속의 단계에서조차 의식은 아주 초보적이기 때문에, 보다 높은 형태인 식물과 나무의 단계로 옮겨가야 한다; 식물과 나무의 단계에 도달하면, 생장 부패 및 번식의 생명 유지 과정을 통해 의식 발달에 현저한 진보가 일어난다. 보다 더 발달된 의식 형태의 출현은 대령이 곤충, 새, 동물의 본능적 생명을 통해 발현되고자 할 때 가능하다; 곤충, 새, 동물은 자신의 신체와 주변에 대해 충분히 의식하며, 자기 방어적 감각도 계발되며, 주변 환경을 통제하는 능력을 갖추고자 한다.
고등 동물에서는, 어느 정도의 지능 즉 추리(推理)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지능의 기능은 자기 방어 본능과 자식을 돌보고 보호하는 본능과 같은 본능들의 작용에 의해 엄격히 제한된다. 그래서 의식의 발달은 동물의 단계에서조차 완료되지 못한다; 따라서 참나-계몽(Self-illumination)을 이루려는 대령의 최초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인간 의식

마침내 대령은 의식의 발달이 끝까지 완료되어 자신과 주변 환경을 완전히 의식하는 인간의 형태를 취한다. 인간 단계에서의 추론(推論) 능력은, 가장 광범위한 활동 영역을 지니며 그 범위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대령은 자체의 의식을 통해 물질적 신체(gross body)와 스스로를 동일시한다; 따라서 의식은 대령의 본성을 깨우치려는 목표에 여전히 기여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의식은 인간 형태에 이르러 최대한도로 발달이 완료됐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참나-깨달음(Self-realization)을 이룰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진화 과정을 시작한 그 ‘의식하고픈 의지’는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꽃인 삿구루, 즉 맨갓(Man-God)에 이르러 결실을 맺는다. 

산스카라의 감김

대령은 평범한 인간의 의식을 통해서는 참나-지식을 얻지 못한다; 인간의 일반적인 의식은 무수히 많은 산스카라들, 즉 인상들(impressions)에 감싸여 있기 때문이다. 의식은 겉보기에 생명이 없는 듯한 돌이나 금속의 상태에서 나무들의 식물 상태를 거쳐, 계속해서 곤충, 새, 동물의 본능적 상태를 지나, 마침내 인간 상태의 완성된 의식에 도달하는데,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산스카라들을 창출하고 그것들에 감싸인다. 이 자연적 산스카라들은 인간 상태에 도달한 후에도, 다양한 체험과 수많은 활동을 통한 비자연적 산스카라들의 창출과 함께 계속 증가한다. 이처럼 산스카라들의 축적은 진화 과정 도중만이 아니라 그 후의 인간 활동 시기에도 끊임없이 계속해서 진행된다. 산스카라들의 획득 과정은 막대기에 실을 감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여기서 실은 산스카라를, 막대기는 개체적 영혼의 마음(mind)을 의미한다. 실은 천지창조의 기원에서부터 감기기 시작하여, 모든 진화 단계들과 인간 형태에 이르기까지 지속된다; 감긴 실은 자연적 산스카라만이 아니라 비자연적 산스카라 모두를 상징한다.

인상들이 지닌 효력의 예

인간의 삶에서 끊임없이 창출되는 새로운 산스카라들은, 의식이 당면하는 온갖 다채로운 사물들과 생각들로 인해서 생겨난다. 이 산스카라들은 여러 다양한 의식 상태에 중요한 변화들을 가져온다. 아름다운 사물들에 의해 창출되는 인상들은 의식 안에 아름다움을 즐기고 감상하는 선천적 능력을 불러 일으키는 효과가 있다. 우리가 좋은 음악을 듣는다거나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 이 대상들로부터 받은 인상들은 열광의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은 식으로, 우리가 어떤 사상가의 인격을 접할 때 새로운 방식의 사고에 흥미를 느끼고 이제까지는 의식하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열정에 의해 영감받을 수 있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인상 뿐 아니라, 어떤 아이디어와 미신에 대한 인상마저도 의식의 상태를 결정하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미신에 대한 인상들

미신에 대해 인상들이 지닌 효력은 귀신 이야기를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있다. 인간 생각의 다양한 영역 중에서 미신이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영역은 귀신과 관련된 영역이다; 민간 신앙에 의하면, 귀신들은 자신의 희생자들을 기묘한 방법으로 괴롭히고 고문한다고들 한다. 아주 먼 옛날 무굴 제국이 인도를 다스리던 시절, 귀신 이야기에 매우 회의적인 높은 학식을 지닌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귀신 이야기를 자신의 체험을 통해 직접 확인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아마바스야(한 달 중 가장 어두운 밤) 밤에 어느 묘지에는 절대로 가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었다; 그 묘지에는 무시무시한 귀신이 살고 있는데, 묘지 안의 땅에 쇠못을 망치로 박으면 틀림없이 그 귀신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마바스야날 밤에 한 손에는 망치를, 한 손에는 쇠못을 들고 그 묘지로 곧장 걸어들어갔다; 그리고는 쇠목을 박기 위해 잔디가 없는 맨땅을 골랐다. 땅은 어두웠고 그의 느슨한 망토도 똑같이 어두워졌다. 그가 땅에 앉아 망치로 못을 박으려 할 때, 땅과 못 사이에 망토의 끝자락이 끼였고 그는 그 위로 망치질을 하였다. 망치질을 끝낸 그는 귀신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실험 결과에 만족감을 느꼈다. 그런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가려고 할 때, 땅에서 무언가가 자신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을 느끼고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는 과거 인상들의 영향력으로 인해, 자신을 마지막에 붙든 것은 유령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이 생각이 주는 충격이 너무나도 커서, 이 가엾은 남자는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미신이 창출하는 인상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산스카라들에서 자유로울 때, 체험은 조화로워진다  

인상들의 힘과 영향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인상은 ‘결정화된 힘'(solidified might)이다; 불활성(不活性)으로 인해 인상은 움직이지 않고, 끈질기게 오래 간다. 인상들은 인간의 마음에 너무도 깊숙이 새겨져 있어서 우리가 아무리 전심전력으로 뿌리뽑으려 해도,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자체의 효력을 행위로 옮겨내는 고유의 시간과 방식을 지닌다. 마음에는 여러 다른 종류의 산스카라들이 들어있다; 이 산스카라들은 각자의 의식적 표현을 추구하는 도중에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의식은 이러한 산스카라들의 충돌을 정신적 갈등으로 체험한다. 모든 산스카라들(산스카라가 좋든 나쁘든)로부터 의식이 해방될 때까지, 체험은 혼란스럽고 수수께끼 같으며, 온갖 갈등과 복잡한 얽히고 설킴, 오락가락 하는 동요로 가득찰 수밖에 없다. 체험이 진정으로 조화롭고 온전해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의식이 모든 인상들로부터 해방될 때 뿐이다.

산스카라들의 종류와 의식의 상태들 

산스카라들은 그들이 관여하는 영역의 본질적 차이에 따라 분류될 수 있다. 그들이 관여하는 각기 다른 존재 영역에 따라, 산스카라들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1) 물질적(gross) 산스카라들은, 영혼이 물질적 매개체를 통해 물질적 세계를 체험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영혼이 스스로를 물질적 신체와 동일시하게 만든다. (2) 기적(subtle) 산스카라들은, 영혼이 기적 매개체를 통해 기적 세계를 체험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영혼이 스스로를 기적 신체와 동일시하게 만든다. (3) 정신적(mental) 산스카라들은, 영혼이 정신적 매개체를 통해 정신적 세계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영혼이 스스로를 정신적 신체와 동일시하게 만든다. 개체적 영혼이 지닌 의식 상태의 차이는 전적으로 그 의식에 실려있는 산스카라들의 종류에 달려있다. 따라서 물질적 의식을 지닌 영혼들은 물질적 세계만을 체험하고, 기적 의식을 지닌 영혼들은 기적 세계만을 체험하며, 정신적 의식을 지닌 영혼들은 정신적 세계만을 체험한다. 이 세 종류의 영혼들이 질적으로 다른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은, 각기 지닌 산스카라들의 본질적 차이 때문이다.

참나-의식(Self-conscious)을 지닌 영혼들은 산스카라들로부터 자유롭다

참나-의식(Self-conscious)을 지닌 영혼들은 참나(Self)를 매개체로 대령을 체험하기 때문에, 다른 모든 영혼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반면 다른 모든 영혼들은 자신이 지닌 신체와 그 신체에 해당되는 세계만을 체험한다.참나-의식을 지닌 영혼과 다른 영혼들이 극단적으로 다른 이유는, 대부분 영혼들의 의식은 각종 산스카라들의 제약을 받지만 참나-의식을 지닌 영혼의 의식은 모든 산스카라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 때문이다. 의식이 어떤 산스카라에 의해서도 흐려지거나 제약받지 않을 때만이, 최초의 ‘의식하고픈 의지’가 스스로의 최종적이고 진정한 결실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절대존재의 불가분한 일원성과 무한함을 의식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따라서 산스카라들의 제거를 통한 마음의 정화 작업/ 해체 작업(deconditioning)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