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3 신과 개체


신과 개체


신만이 유일한 실재(Reality)다

신(神)은 무한하다. 신은 선과 악, 옳고 그름, 미덕과 악덕, 탄생과 죽음, 쾌락과 고통 등의 이원성을 넘어서 있다. 이러한 이원적 측면들은 신의 것이 아니다. 만일 신을 하나의 분리된 독립체로 본다면, 신은 하나의 상대적 존재가 될 것이다. 이것은 선과 악이 서로 대응관계에 있듯이 신을 비-신(not-God)과 대응관계로 보는 것이며, ‘무한’을 ‘유한’의 반대편으로 보는 것이다. ‘유한’과 ‘무한’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이들을 둘로 구분한 것이며, 이 때 ‘무한’은 이미 이원성의 한 쪽 측면이 된 것이다. 하지만, 무한은 상대가 없는 비이원적(non-dual) 존재에 해당한다. 만일 ‘무한’을 ‘유한’의 대응 상대로 본다면 이러한 ‘무한’은 ‘유한’의 상대로서 ‘유한’의 바깥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더이상 ‘무한’하다기보다는 일종의 ‘유한’이 될 것이다. ‘무한’은 ‘유한’의 대응 상대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존재하는 듯한 ‘유한’의 존재성도 거짓이다. 오직 ‘무한’만이 홀로 실재한다. 신은 이원성의 영역으로 끌어내려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오직 하나의 존재만이 실재하며, 그 존재는 바로 우주적 대영혼(Universal Soul)이다. 모든 유한하거나 한정된 것들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며, 존재하는 듯할 뿐이다.  

 존재하는 듯한 ‘유한’

그대는 무한하다.  그대는 실제로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그대는 자신이 육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제한된 존재로 여긴다. 그대가 지금 자리에 앉아있는 몸을 자신이라고 여긴다면, 그대의 참된 본성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그대가 내면으로 들어가 자기 영혼의 참된 본성을 체험한다면, 그대가 천지창조(all creation)를 넘어서는 무한한 존재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자신을 육체와 동일시한다. 이 그릇된 동일시는 무지에서 기인한다; 이 무지는 마음(mind)을 매개체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일반적인 사람은 자신이 물질적 신체(physical body)라고 생각한다. 영적으로 진보된 사람은 자신이 기적 신체(subtle body)라고 생각한다. 성자는 자신이 마음(mind)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 중 그 누구도 직접적인 참나-지식(Self-knowledge)을 지닌 영혼은 없다. 즉 이들은 환상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생각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대영혼(Soul)으로서의 영혼(soul)은 무한하며, 육체와 마음을 넘어서 있다; 그러나 무지로 인해 마음의 지배를 받게 되고 ‘생각하는 이’가 된 것이다; 따라서 때로는 자신을 육체로 여기고, 때로는 마음으로 여기게 된다. ‘마야’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의 한정된 관점으로 보면, 무수히 많은 개체들이 존재하는 듯 하다. 수많은 개체들이 있는 만큼 마음과 육체도 수없이 있는 듯 하다. 사실, 존재하는 것은 우주적 대영혼(Universal Soul) 하나뿐이다; 단지 개체가 다른 개체들과 자신이 다르다고 생각할 뿐이다. 서로 다른 듯한 여러 개체들의 마음(mind) 가장 뒷편에는 단 하나의 같은 대영혼(Soul)이 자리하며, 이 대영혼은 그들을 통해 다양하게 이원성을 체험한다. 여럿(many) 속의 하나(One)가 여럿(many) 중의 하나(one)로 스스로를 체험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거짓된 사고(thinking), 즉 상상 때문이다.

거짓된 사고(false thinking)의 원인   

사고(thingking)가 잘못되는 이유는, 의식의 진화 과정 동안 축적해온 산스카라들(sanskaras)의 간섭 때문이다. 의식의 기능은 -욕망으로 나타나는- 산스카라들의 작용에 의해 왜곡된다. 의식은 여러 생을 거치면서, 체험들로부터 비롯되는 후유증의 부담을 계속적으로 받고 있다. 영혼의 지각(perception)은 이 후유증들에 의해 제한된다. 영혼의 생각은 산스카라들이 만들어낸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의식은 자체의 거짓된 사고가 투영한 환상에 꼼짝없이 사로잡힌 포로가 된다. 이러한 사고의 왜곡은 의식이 부분적으로 발달된 동물뿐 아니라, 의식의 발달이 완료된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완성된 의식의 활동범위

돌의 단계에서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진보되는 의식의 진화과정은, 인간의 단계에 이르러 절정에 도달한다. 진화의 역사는 의식의 점진적인 발달의 역사다. 진화의 결실은 완성된 의식(full consciousness)이며, 완성된 의식은 인간의 특징이다. 그러나 이 완성된 의식마저도 먼지로 뒤덮인 거울과 같다. 산스카라들의 작용 때문에, 의식은 영혼의 본질에 관한 참되고 명백한 지식을 비추지 못한다. 의식이 완전히 발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은 진실 대신 상상의 피조물만을 낳게 된다;  이는 의식의 기능이 산스카라들의 무게에 의해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더불어 의식은 자체의 욕망들이 만들어낸 새장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 활동범위도 제한된다. 

의식의 개체화

의식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산스카라들에 의해 정해지며, 의식의 기능 역시 욕망들에 의해 정해진다. 욕망들이 자기 만족을 추구하면서, 의식의 전체는 자기 중심적이 되고 개별화된다. 이 의식의 개체화는 어떻게 보면, 욕망의 소용돌이(vortex of desires)에서 초래되는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영혼은 온갖 욕망들에 휘말려 그 욕망들이 구성하는 제한된 개체성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영혼은 스스로가 테두리를 상상하고는, 자기-최면(self-hypnotized)에 걸려든다. 영혼은 스스로를 다른 개체들과 분리된, 한정된 존재로 보게 된다. 영혼은 개체적 존재성에 얽매이고, (각각의 육체와 마음을 지닌 수많은 개체들로 이루어진) 각양각색으로 분리된 존재들의 세상을 상상하게 된다.

분리됨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태양빛이 프리즘을 관통하면, 빛은 굴절작용에 의해 분산되어 갈라지게 된다. 만일 각각의 광선들이 의식을 지닌다면, 그들은 자신을 다른 광선들과 분리된 존재라고 여길 것이다; 그들은 프리즘을 관통하기 전에 근원에서는 분리된 존재성이 없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식으로, 유일한 존재(One Being)는 마야(Maya)의 영역으로 내려와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다양성을 지니게 된다. 이 개체들의 분리성(separateness)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하나뿐인 우주적 대영혼(Universal Soul)이 스스로를 분리된 존재로 상상한다; 이 분리됨으로부터 ‘나’와 ‘내 것’, 이것에 상대되는 ‘너’와 ‘네 것’이라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영혼은 실제로는 나뉨이 없는 절대적인 단일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상상작용에 의해 다양하게 나누어진 존재인 듯 보이게 된다. 상상은 실재(Reality)가 아니다. 그 아무리 우수한 상상이라 해도,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상상은 결코 진실이 아니다. 개체화된 에고로서 영혼이 축적해온 모든 체험들은 전부 상상이다. 이 체험들은 모두 영혼의 헛된 인식일 뿐이다. 우주적 대영혼(Universal Soul)의 상상으로부터 수많은 개체들이 탄생한다. 바로 이것이 마야(Maya) 즉 무지다.  

객관적 우주

분리되고 한정된 개체의 탄생과 나란히 더불어 객관적 우주(objective universe)도 존재하게 된다. 한정된 개체의 분리적 존재성이 사실이 아닌 상상에 불과하듯이, 객관적 우주도 그 어떤 독립적이고 분리된 실재성이 없다. 객관적 우주는, 유일한 우주적 참나(one universal Self)가 이러한 속성들을 통해 두번째 역할로 발현된 것이다. 마야의 영역으로 하강할 때, 영혼은 스스로 ‘온갖 다양한 존재'(manifold existence)의 제한성을 취한다. 영혼이 취하는 이 자기-제한(self-limitation)은, 의식의 제단에 자신을 희생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영혼은 ‘불변의 무한한 절대적 존재’로 영원히 남지만, 시간, 다양성, 진화의 세계로 내려오는 현상적 하강을 통해 일종의 ‘무기한적 수축'(timeless contraction)을 겪는다. 그러나 실제로 진화하는 것은 영혼이 아니라, 그 영혼의 의식뿐이다 – 이 의식의 한계들 때문에 제한된 개체성이 생기게 된다

3중 얽힘과 이원성

한정된 개체(limited individuality)의 역사는, 마음, 에너지, 물질(몸)과의 3중 얽힘이 발전되는 역사다. 이 세 영역은 모두 이원성(duality)의 지배를 받는다; 영혼은 본질적으로 이원성을 초월함에도 불구하고, 이 영역들 속으로 얽매여 들어간다. 이원성에는 긴장을 통해 서로를 제한하고 균형을 잡아가는 반대극들(opposites)의 존재가 암시된다. 좋고 나쁨, 미덕과 악덕은 이러한 반대극들의 예다. 이원성에 휘말려 있는 무지한 영혼은, ‘좋음’과 ‘나쁨’ 둘 다에 얽매여 있다. ‘좋음’과 ‘나쁨’의 이원성은 무지로 인해 발생한다;  하지만 한 번 얽히기 시작한 영혼은 이원성의 지배를 받는다.
물질(몸), 에너지, 마음과의 3중 얽힘의 진화과정 도중에, 무지한 영혼은 계속해서 원함의 손아귀에 잡혀 있다. 영혼은 물질세계(gross world)의 좋고 나쁨을 원하고, 기적세계(subtle world)의 좋고 나쁨을 원하고, 정신세계(mental world)의 좋고 나쁨을 원한다. 이러한 좋고 나쁨의 구별로 인해, 영혼의 원함도 좋거나 나쁜 원함으로 구별된다. 따라서 원함도 끊임 없이 계속되는 반대극들의 긴장에 의해 필연적으로 제한된다. 이 긴장은 (영원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무한한 상태에 도달하는 대신)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는 진동을 야기한다. 무한함은 이원성의 영역을 넘어선 곳에서만 찾을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먼저 의식이 산스카라의 장벽들을 부수고 나와 한정된 개체성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한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협곡(chasm)

이제까지 우리는 의식의 활동 가능 범위가 산스카라들에 의해 어떻게 제한되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제한됨은 인간의 정신구조를 두 부분으로 나누는 역할을 한다. 그 중 한 부분은 의식할 수 있는 범위에 해당되며, 다른 한 부분은 의식을 넘어선 범위에 해당된다. 이 무의식적인 부분의 전체적인 규모는 물질(matter)이 존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힘(power)과 동일하다. 이것을 정통 종교들(orthodox religions)에서는 하나님(신, God)이라고 부른다. 이런 개념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되는 그 궁극적 실재를 완전히 알 수 있는 길은, 오직 무의식을 의식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것뿐이다. 의식의 확장은, 전에는 무의식의 일부였던 것을 의식하게(being conscious) 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의식이 무의식을 점진적으로 정복해가는 과정은, 무한한 범위와 무제약적 기능을 지닌 ‘완벽한/무상의 의식'(consummate consciousness)에 도달할 때 절정에 이른다. 이 최고 상태의 의식과, 평범한 인간이 지닌 (완성된 상태지만) 제한적인 의식 사이에는, 약 49개의 의식 계몽(illumined consciousness)의 단계들이 있다. 이 단계들은 점차적으로 계몽되어 가는 의식의 주요 단계들을 말한다.

영적 진보

평범한 인간의 흐릿한 의식과 완벽한 스승(Perfect Master)의 완전히 계몽된 의식 사이의 커다란 격차는 ‘이기주의'(egoism)를 일으키는 산스카라들에 의해 만들어진다.이 산스카라들은 완벽한 성품, 헌신, 사심 없는 봉사를 통해 제거될 수는 있으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완벽한 스승(Perfect Master)의 도움을 받는 길이다. 영적 진보는 의식을 계속 더 발전시키는 데에 있지 않다(인간의 단계에서 의식은 이미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적 진보는 의식을 오히려 산스카라들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에 있다.  의식은 모든 다양한 상태의 존재 안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하지만 의식이 무지의 그림자 한 점 없이 무한함의 참지식을 비추지 않고는 결코 정점에 도달할 수 없다; 또한 존재의 다양한 영역들을 비추는 창조의 전체 범위를 다루지 않고는 의식의 정점에 이를 수 없다. 의식은 모든 다양한 상태의 존재 안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하지만 의식이 한 치의 무지 없이 무한에 대한 지식/참지식을 비추지 못한다면 결코 절정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의식이 천지창조의 전체 규모와 존재의 모든 다양한 영역들을 비추어보지 못한다면, 결코 절정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깊은 잠

매번 잠들 때마다, 그대는 무한한 실재(Infinite Reality)와 무의식적으로 합일된다. 이 합일은 무의식이 의식 위로 확장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무의식과 의식 사이의 협곡이 연결된다. 그러나 그대는 이 합일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로부터 어떠한 혜택도 의식적으로 얻지 못한다. 그대가 깊은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전날 하던 일상적인 행동과 체험으로 돌아오고, 이전 그대로의 인간성을 지닌 뻔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일 이 최상의 실재(Supreme Reality)와의 합일이 의식적으로 일어났다면, 잠에서 깰 때 그대는 완전히 새롭고 무한히 풍요로운 삶을 맞이했을 것이다. 

무한한 실재와의 의식적 합일

완벽한 스승은 무한한 실재와 의식적으로 합일되어 있다. 그의 경우, 의식과 무의식을 가르는 협곡이 연결돼 있다; 그의 상태는 사람이 깊은 잠을 즐길 때처럼 무의식이 의식 위로 확장된 것이 아니라, 의식이 무의식 위로 확장된 것이다.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는 동요는 한정된 개체에게만 해당된다. 완벽한 스승의 경우는, 의식이 무의식을 최종적으로 영구히 정복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참나-지식(Self-knowledge) 상태는 변함없이 지속되고 깨어지지 않으며, 한 치의 감소도 없이 같은 상태로 남아있다. 완벽한 스승의 경우는, 의식이 무의식을 최종적으로 영구히 정복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참나-지식(Self-knowledge) 상태는 끊임없이 지속되며, 한 치의 변화도 감쇠도 겪지 않는다. 이를 통해, 완벽한 스승은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 의미의 수면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몸을 쉴 때에도 단 한 순간도 의식의 단절을 체험하지 않는다.

완벽의 상태

완벽의 상태에 든 ‘완성된 의식’은 계몽(Illumination)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들이 사라짐으로써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이는 무의식에 대한 의식의 정복이 완료된 것으로, 그 인간은 밝게 타오르는 계몽(Illumination)의 영광 속에 끊임없이 거하며, 계몽과 하나가 된 채 남는다. 그는 계몽 그 자체가 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원성의 지배를 받아 여전히 각양각색의 체험들을 참되고 최종적인 것으로 여긴다면, 그는 아직 무지의 영역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최종적 이해의 단계에 도달한 인간은, 둘도 없는 하나(one)인 무한(The Infinite)이 유일한 실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무한은 편재하며, 그 어떤 경쟁자도 남김 없이 모든 존재를 포함한다. 이러한 깨달음을 지닌 사람은 최고의 의식 상태를 달성한 것이다. 이 상태는 진화의 열매인 ‘완성된 의식’을 보유한 채, 산스카라와 욕망들이 야기하는 한계들을 완전히 초월한 상태다. 무지의 창조물인 한정된 개체성은(individuality), 무제한의 ‘신성한 인격'(Divine Inidividuality)으로 전환된다. 제한불가한(illimitable) ‘우주적 대영혼’의 의식이 (그 어떤 형태의 환상도 일으키지 않고) 하나의 인격으로 집중되어 개체화(individualized)된다./’우주적 영혼’의 광대한(illimitable) 의식이 그 어떤 형태의 환상도 일으키지 않고, 하나의 인격에 집중된 것이다. 그 사람은 모든 자기 중심적인 욕망들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며, 신성을 표현하는 ‘지고의 우주적 의지'(supreme and universal will)가 자발적으로 흐르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개체성은 모든 무지가 사라짐으로써 무한해진다. 개체성은 마야의 분리성과 이원성의 얽매임에서 벗어나면서, 거리낌 없는 기쁨, 순수한 존재, ‘대상 없는 자각'(objectless awareness)을 누리는 해탈의 상태를 즐긴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인간을 혼란에 빠뜨리고 당황하게 만드는 일체의 환상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다. 어떤 면에서 그는 죽은 사람이다. 분리감의 근본적 원인인 개인적 에고가 이미 영원히 전멸된 것이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정복될 수 없는 사랑과 영원한 지복을 누리며 그는 영원히 살아있다. 그는 전지전능하며, 전체 우주는 그의 영적 작업인 인류의 완벽화를 위한 터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