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와 무 54장 – 지금 이 순간(NOW)

지금 이 순간(NOW)

천문학자들은 시간을 이야기 할때 수십억, 수십조,  또는 이온/영겁(Aeon)의 시간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그들의 수학적 계산에 있어 이 거대한 숫자들도 부족하여 그들은 앞으로 더 큰 새로운 용어들을 개발해야되는 수도 있다.

내가 시간의 기원과 종말을 만일 천문학적인 용어로 설명하려 든다면, ‘영원함’(Eternity)이 걸려도 결코 시간의 시작과 끝을 다 묘사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시점에는 그 순간의 ‘그전’과 ‘그후’가 있다.  과거의 ‘어제’들과 미래의 ‘내일’들은  모두 ‘영원함 속에서의 현재의 이 순간’(NOW of the present moment in Eternity)이라 불리는 지금 당장의 이 찬라/순간에 의해 정해진다.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하여 영원함 속의 ‘지금 이 순간’(NOW)의 시작과 끝을 상상하여도, 결코 어떤 시간의 측정단위를 더하고 빼는 이상은 안되며, 이 과정은 결국 {무수의} 영들/공들(zeros)을 더하고 빼는 것밖에는 안된다.  제아무리 시간을 들여 {수학적으로} 영겁의 주기들을 거듭해가며 합쳐도,  ‘그 영원함의 지금 이 순간의 시작과 끝’(the beginning or end of NOW in Eternity)에 관해선 티끌만치의 개념도 잡히지 않는다.

The Now

Astronomers speak of time in terms of billions, trillions and aeons of years. Eventhese figures are not adequate for their mathematical calculations and they may be required to coin new terms.

If I were to try and explain in astronomical terms the beginning and end of time, it would never depict the beginning and end of time in Eternity.

There is always an ‘ago’ and there is always an ‘after’ to every point in time. The ‘yesterdays’ of the past and the ‘tomorrows’ of the future hinge on a point in time which is the NOW of the present moment in Eternity.

In a flight of imagination imagining the beginning and the end of the NOW of the present moment in Eternity, one can at the most either add or subtract a measure of time; but this would be nothing more than an adding or erasing of zeros. No amount of swing, even of aeons of cycles, in the sweep of time can give an iota of concept of any beginning or end of the NOW in Eternity.

Comments

  1. mnm.mark@gmail.com says

    참고로 천문학에는 이미 ‘google'(구글)같은 영어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2. says

    “상상력을 동원 하여 → 상상력을 동원하여”

    # 한글띄어쓰기의 경우는 출판시점에서 다시 교정하면 될 것들이라
    지금 문맥의 흐름을 살펴보는 단계에서는
    크게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경첩( hinged)되어 있다. → 정해져 있다.

    # 이건 문맥의 흐름상 고려해볼 사안 같아서 적어봅니다^^

    • mnm.mark@gmail.com says

      말씀하신대로 일단 경첩을 ‘정해져 있다’ 로 고쳤습니다. 그러나 ‘정해져 있다’ 또는 ‘determined by’ 보다는 좀더 강한 표현이 맞습니다. 예를 들어 코가 결려있다. 사실 ‘소의 코뚜레’ 같은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즉, 과거와 미래가 지금 이 순간에 의해 코뚜레에 걸려 끌려다닌다는 뜻이 있습니다. 또는 ‘달려 있다’ ‘매달려 있다’ 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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