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와 무 36장 – 앎과 무지

Knowing and Not Knowing

앎과 무지


Being the highest and the lowest I manifest Knowledge and assume ignorance at the same time.

나는 가장 높으면서도 가장 낮기 때문에, 참지식(Knowledge)을 발현하는 동시에 무지를 취한다.

Even though I know a certain thing will happen within a month, I may chalk out plans as if it was not to occur for years. Again, knowing that an event will not take place for years, I appear to expect it to happen shortly.

나는 한 달 안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면서도, 수 년 동안 그 일이 생기지 않을 것처럼 계획을 잡기도 한다. 또한 어떤 사건이 수 년 동안 일어나지 않을 걸 알면서도, 곧 일어날 것처럼 예상하는 듯 행동할 때도 있다.

In Dnyan(Knowledge) there is Adnyan (Non-knowledge or Ignorance). But in Adnyan there cannot be Dnyan. Having all knowledge on the highest level, I can assume full ignorance on your level. In fact I am Infinite Knowledge, and as such I know what is to happen even after hundreds of years, yet I profess ignorance while I am on your level.

참지식(Dnyan) 안에는 무지(Adnyan)가 들어있다. 그러나 무지(Adnyan) 안에는 참지식(Dnyan)이 있을 수 없다. 내가 그대들의 수준으로 내려와 완전한 무지를 취할 수 있는 것은, 가장 높은 수준에서 모든 지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무한한 지식이다; 따라서 수백 년 후에 일어날 일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대들의 수준에 있는 동안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Even on the gross plane and in ordinary circumstances knowledge and ignorance can be manifested simultaneously. For instance, you say: I do not know how to swim. This implies that you know that you do not know how to swim. Were you not to know you do not know, you could not have had this understanding. This is ‘knowledge of ignorance’.

이 물질적 경지(gross plane)의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지식과 무지는 동시에 드러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대가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릅니다.”라고 얘기한다고 하자. 이 말에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그대가 알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만약 모른다는 사실을 그대가 몰랐더라면, 이러한 이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무지에 대한 지식’이다.

In the same way, I who am Knowledge itself manifest ignorance of knowledge. Knowing all, I seem not to know at one and the same time.

마찬가지로, 참지식(Knowledge) 자체인 나도 지식(knowledge)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다. 그래서 모든 것을 알면서도, 동시에 모르는 듯 보이는 것이다.

 

Comments

  1. maya49 says

    Knowing and Not Knowing
    앎(지식) 과 무지(비-지식) -> 앎과 무지

    Being the highest and the lowest I manifest Knowledge and assume ignorance at the same time.

    나는 가장 높으면서도 가장 낮기 때문에, 지식(앎)과 무지를 동시에 나타낸다{발현한다}.
    -> 나는 가장 높으면서도 가장 낮기 때문에, 지식을 드러내는 동시에 무지를 가장(假裝)한다.

    (assume에 가장하다(pretend)의 뜻이 있는데, 아래아래 문단의 I can assume full ignorance on your level.에서도 ‘그대들의 수준으로 내려와 완전한 무지를 가장한다. 즉 모르는 척 한다는 뜻이 적합하게 보이는데요.
    만약 ‘가장한다’가 아니라면, ‘지식과 무지를 동시에 드러낸다’는 어떨까요?)

    Even though I know a certain thing will happen within a month, I may chalk out plans as if it was not to occur for years. Again, knowing that an event will not take place for years, I appear to expect it to happen shortly.

    나는 한달 후에 무슨일이 벌어질 줄 알면서도 그 일이 수년동안 안 일어날 것처럼 계획을 잡을 때가 있다. 또는, 어떤 이벤트가 수년동안 안 일어날 줄 알면서도, 나의 행동은 그 일이 곧 벌어질 것으로 기대하듯이 할 때가 있다.
    -> 나는 한 달 안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면서도, 수 년 동안 그 일이 생기지 않을 것처럼 계획을 잡기도 한다. 또한 어떤 사건이 수 년 동안 일어나지 않을 걸 알면서도, 곧 일어날 것처럼 예상하는 듯 행동할 때도 있다.(보여질 때도)

    In Dnyan (Knowledge)there is Adnyan (Non-knowledge or Ignorance). But in Adnyan there cannot be Dnyan. Having all knowledge on the highest level, I can assume full ignorance on your level. In fact I am Infinite Knowledge, and as such I know what is to happen even after hundreds of years, yet I profess ignorance while I am on your level.

    단얀(Dnyan참지식/참앎) 속에는 아댠(Adnyan 무지, 비-지식)이 들어있다. 그러나 아댠(무지) 속에는 단얀(참앎)이 들어있을 수 없다. 내가 그대들의 레벨(수준)으로 내려와 완전한 무지를 취할 수 있는 것은, 동시에 가장 높은 레벨(수준)의 모든 지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무한한 지식이다; 따라서 수백년후에 일어날 일들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그대들과 그대들의 레벨(수준)에 같이 하는 동안에는 모르는 듯이 한다.

    -> 참지식(단얀, Dnyan) 안에는 무지(아댠 or 아드냔, Adnyan)가 들어있다. 그러나 무지(Adnyan) 안에는 참지식(Dnyan)이 있을 수 없다. 내가 그대들의 수준으로 내려와 완전한 무지를 가장할 수 있는 것은, 가장 높은 수준에서 모든 지식을 알고(‘지식을 소유한다’는 표현보다는 ‘지식을 안다’가 어떨까요? 아니면 ‘지식을 가지고 있다’… )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무한한 지식이다; 따라서 수백 년 후에 일어날 일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대들의 수준에 있는 동안 모르는 척 하는 것이다.

    * profess – ⓵공언하다, 단언하다, 고백하다/ ⓶ <…인> 체하다, <…이라고> 자칭하다, 가장하다(pretend) – 여기서는 분명 두 번째 뜻으로 보이는데요. ASSUME도 같은 의미로..

    *여태까지 다른 chapter에서는 Dnyan을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20장 : 영혼이 ‘자신이 일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단얀(Dnyan) 또는 지식(Knowledge)이라고 한다.
    21장: 신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 즉 단얀(Dnyan)은 신과 하나가 되는 체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이는 오직 완벽한 스승의 은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즉, 단얀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주로 ‘지식’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여기서는 같은 단얀에 대해 ‘참지식’이라고 번역을 하니 일관성이 없는 듯 보입니다. 특히 22장을 보면, Bahaya Dnyan/ Antar Dnyan/ Brahma Dnayn 이렇게 세 가지가 있다고 나오는데요. 그러면, Dnyan이 반드시 ‘참지식’만 의미하는 건 아닌데, 여기 이 chapter에서는 신의 참지식을 말하는 건 맞는거 같은데요. 그러므로 이 장에서는 ‘참지식’이라 번역하는 게 적합한 듯 보이네요. 그러면 어떤 때는 그냥 ‘지식, 어떤 때는 ’참지식‘ 이렇게 혼용해도 될까요?

    Even on the gross plane and in ordinary circumstances knowledge and ignorance can be manifested simultaneously. For instance, you say: I do not know how to swim. This implies that you know that you do not know how to swim. Were you not to know you do not know, you could not have had this understanding. This is ‘knowledge of ignorance’.

    이 물질적 경지(gross plane)에서 (또는 일반적인 상황속에서도 ) 지식과 무지는 동시에 발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대가 ‘저는 수영을 할 줄 모릅니다’ 라고 했다고 하자. 이 말에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재대로} 알고 있다는 뜻이 담겨있다. 만약에 모른다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이런한 이해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무지에 대한 지식이다. (모름에 대한 앎)

    -> 이 물질적 경지(gross plane)의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지식과 무지는 동시에 드러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대가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릅니다.”라고 얘기한다고 하자. 이 말에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그대가 알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만약 모른다는 사실을 그대가 몰랐더라면, 이러한 이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무지에 대한 지식’이다.

    In the same way, I who am Knowledge itself manifest ignorance of knowledge. Knowing all, I seem not to know at one and the same time.

    마찬가지로, 지식(참앎: Knowledge) 그 자체인 나도 지식에 대한 무지를 발현한다{나타낸다}. 그래서 동시에 일체 모든 것을 다 알면서도 모르는 듯한 것이다.

    -> 마찬가지로, 지식 그 자체인 나도 지식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다. 그래서 모든 것을 알면서도, 동시에 모르는 듯 보이는 것이다.

  2. mnm.mark@gmail.com says

    1. 무지를 가장(假裝)한다.
    –> 무지를 취한다.

    가장이 아니라 진짜로 취하는 것입니다.
    assume the position. -매 맏기 전에 맞을 준비하라는 뜻.
    무엇 무엇이 되는 것입니다. 되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3. mnm.mark@gmail.com says

    2. ->그러나 그대들의 수준에 있는 동안 모르는 척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의 수준에 있을 때에는 모든다고 한다. (profess)

  4. mnm.mark@gmail.com says

    3. 그러면 어떤 때는 그냥 ‘지식, 어떤 때는 ’참지식‘ 이렇게 혼용해도 될까요?
    예, 어쩔 때는 지식 어쩔 때는 참지식; 단얀은 5경지 부터시작하나 직접적인 참지식인 단얀은 7경지만…
    상의합시다..